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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에서 이혼하려면 결혼식 때처럼 입어야 한다는 사진 사실은…

access_time 2018.05.18 19:24


사실 좀 슬펐습니다.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너무 쉽게 믿는 분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 때문에 말입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고 있는 한 분께서 '가나에서 이혼하기 힘든 이유'라며 아래 사진을 올리셨습니다. 



이 사진이 '가짜'라는 건 벽에 쓴 글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가나는 영어를 사실상 공용어로 쓰는 나라입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나 사람일 샘 오취리 씨(27)가 자기 나라 방송에 출연한 화면을 보시면 이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쓰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취리 씨가 한국을 영어로 뭐라고 표현하는지 지켜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진에 등장하는 안내문은 프랑스어입니다. 거칠게 번역하면 'Salle De Divorce'는 '이혼(하는) 방'이라는 뜻이고, 'Tous Les Coups Sont Permis'는 '사진을 마음대로 찍어도 좋다(All shots are allowed)'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이렇게 널리 쓰는 나라 공공기관에서 프랑스어로 공지를 쓴 것도 이상하지만 저렇게 함부로 남을 놀려도 좋다는 문구를 썼다는 건 더욱 말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혼하고 나왔는데 아무나 마음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한다면 참으시겠어요? 가나에서는 저게 가능할까요?


실 이 사진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흥한 떡밥입니다. 이 트위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 저처럼 '가나에서는 프랑스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는 누리꾼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웃고 즐기기 바쁩니다. 



그렇다면 사실은 뭘까요? 일단 가나 '결혼생활법' 어디에도 저런 내용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사진 속 장소는 가나가 아니라 우간다입니다. 그리고 이혼 장면이 아니라 결혼 장면입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건 이 사진이 2009년 영국 공립 물·환경 관리 기구(CIWEM) 환경 사진 공모전 장려상(Highly commended) 수상작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상 소식을 전한 영국 일간 텔레프래그 기사를 보시면 원본 사진에는 벽면에 글씨가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간다도 영어와 스와힐리어가 공용어로 프랑스어를 주로 쓰지 않는 나라입니다.) 누군가 아프리카에 프랑코포니 회원국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장난을 쳤다고 짐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 사진 제목은 'My Big Fat Ugandan Wedding'입니다. 한국에서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라고 제목을 번역한 영화 'My Big Fat Greek Wedding'에서 따온 것. 이 사진에 등장하는 분들은 우간다 사람 가운데서도 아콜리(또는 아촐리·Acholi)족입니다. 


아콜리족은 30년 넘게 정치적 핍박 속에 살고 있습니다. 1986년부터 이 나라 권좌를 차지하고 있는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74)이 '인종 청소'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만큼 이들을 탄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세베니 대통령이 아콜리족을 탄압한 건 1985년 밀턴 오보테 대통령(1924~2005)을 몰아낸 쿠데타 때 아콜리족이 중심 세력이었기 때문. 자기도 당할까 두려웠던 겁니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결국 이들을 가둬두기로 결정합니다. 2006년 기준으로 전체 아콜리족 200만 명 가운데 95%에 해당하는 190만 명이 강제수용소에 갇혀 살고 있었습니다. 잠깐 2006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시면:


구호단체 월드 비전 우간다에 따르면 이곳에 살고 있는 아콜리 어린이들의 사망률은 세계 최고 수준. 매주 최대 1500명의 어린이가 숨지고 있다. 여성의 자살률도 급증하고 있다. 대다수는 성폭행 및 성적 학대를 견디지 못한 경우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우간다 정부는 에이즈 바이러스(HIV) 양성 반응자와 에이즈 환자로 판명된 정부군 병사들을 이곳에 배치해 아콜리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몰살시킨다.


이곳 여성 중 HIV에 감염된 환자는 최근 30∼5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우간다 무세베니 대통령 '충격의 인종청소' 고발


이렇게 삶이 상처뿐인 아콜리족 여성에게 새 삶을 찾아주려고 선택한 게 바로 결혼식이었습니다. 결혼식은 누구에게나 특별하지만 들에게는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으니까요. 



사진 속에 있는 여성들이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는 영국 여성들이 뜻을 모아 기부한 것. 아콜리족 여성들에게 이 웨딩드레스는 결혼식 복장 그 이상입니다. 웨딩드레스 대여업을 통해 생계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강제수용소에서는 모든 물건이 다 구하기 힘듭니다. 웨딩드레스는 그 중에서도 아주 귀하고 특별하죠. 이 드레스 때문에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At the Camp it is very hard to get anything, a wedding dress is very rare and special … I cannot express how happy my dress makes me.) ─ 아콜리족 여성 알로요 크리스틴


그러니까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가나 이혼 사진'에 담겨 있는 감정은 '순수한 행복'입니다. 그저 그들이 이겨내야 했던 삶의 무게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그 행복을 드러내도록 만들었을 뿐이죠. 그러니 저 사진을 보시면 마음속으로 '힘내시오'하고 한번 빌어주시면 어떨까요? 어쩌면 그게 저들보다 훨씬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동포'로서 꼭 지켜야 할 예의일지도 모르니까요.


조금 더 알아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동영상을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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