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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말은 한국어 제주 사투리? 아니면 제주어?

access_time 2018.06.28 20:06


감수광 감수광 난 어떠허랜 감수광 설룬 사람 보냄시엔 가거들랑 혼저옵서예

제주도 출신 가수 혜은이 씨(62·사진)가 1977년 발표한 노래 '감수광'은 제주말로 된 이 후렴구로 유명합니다. (사실 혜은이 씨는 태어난 곳만 제주도일 뿐 초중고 모두 대전에서 졸업했습니다.) 이 말을 표준어로 해석(?)하면 "가십니까? 가십니까? 난 어떡하라고 가십니까? 보내는 마음 서러우니 가시거든 얼른 돌아오세요" 정도가 될 겁니다.


이렇게 별도 해석이 없으면 '육지'에 사는 한국어 화자는 대부분 저 가사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저 노랫말 수준으로 제주말을 쓰시는 분과 서울 사투리 화자가 대화를 나눈다면 통역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언어학에서 사투리와 개별 언어를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상호 의사소통 가능성'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말을 쓰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할 때 통역 없이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사투리, 통역이 필요하면 개별 언어입니다. 


그렇다면 제주말은 한국어 가운데 제주도 사투리일까요? 아니면 제주어라는 개별 언어일까요?


물론 (넓은 의미로) 한국어 가운데 제주말만 이렇게 (서울 사투리에 기반한) 표준어와 차이가 큰 건 아닙니다. 아래는 이기갑 목포대 교수(국어국문학)가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 신로사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채록한 내용 중에서 따온 것.


긔래 모진 앓을 적에느 대문 들어오는 문 싹 열어 놓소 내. 아∼니 끄 오. 혹은 긔래두 그 안에서 숨 없이 살다가 혹은 죽은 녁으느 및 칠이 아 ∼니 됨 한질 아∼니 내 댕기무 혹 타국 사람이라도 문으 열고 들오라는 이거 걔 동삼 같은 때느 벌셔 우리 깔립까 여가레야∼ 자리 없잫갰?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이 교수는 저 말을 "그래서 모질 게 앓을 때에는 대문 들어오는 문 싹 열어 놓소. 내가 끄지 않소. 혹 그래도 그 안에서 숨 없이 살다가 혹 죽을 때에는 며칠 아니 되면 내가 한길 다니지 않으면 혹 타국 사람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오라는 이것 그래 겨울 같은 때에는 벌써 우리 샛문 쪽에 자리 없잖겠소?"라고 풀어 썼습니다. (홀로 죽음을 맞는 상황을 염려해 지나 가는 사람이 발견하면 주검이라도 거두어 달라고 대문을 활짝 열어 넣고 지낸다는 뜻입니다.) 글로 풀어 썼는데 이 정도라면 소리를 직접 들으면 더 헷갈릴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감수광 노랫말 수준으로 제주말을 쓰는 사람과 이 고려인 할머니가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면 말이 통할까요? 확실히 아닐 겁니다. 분명 통역이 필요할 겁니다. 심지어 남한 안에서도 '제대로' 사투리를 쓰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분명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한국어는 그저 한국어라는 단일 언어가 아니라 △한반도 한국어 △제주어 △고려말(중앙아시아 한국어) 같은 개별 언어를 나눌 수 있는 한국어족(族)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요?


일단 유네스코는 2010년 제주말을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했습니다. 제주말을 한국어와 다른 '제주어'로 구분한 겁니다. 


유네스코에서 제주어를 이렇게 별도로 분류해 위기 언어로 등재한 건 제주대 국어문화원에서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제주어를 별개 언어로 보고 싶어하는 의견이 이 결과에 투영돼 있다는 뜻입니다. (제주말을 별개 언어로 구분할 수 있어야 보존 사업에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제주어는 한국어와 다른 언어인가요?"라는 질문에 "일부 학회의 주장이 아닐까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제주말은 (아직) 한국어 사투리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공용어는 진짜 몇 개인가

그렇다고 해서 '제주어는 한국어와 별개 언어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100% '보존 사업용'인 건 아닙니다. '한반도 한국어 vs 제주도 한국어'보다 차이가 적은 데도 개별 언어로 구분하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대표 사례입니다.



나라보다 더 유명한 도시 사라예보가 수도인 이 나라는 △보스니아어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를 공용어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 공용어는 세 개일까요?


공용어는 '한 나라 안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언어'라는 뜻. 그러면 담뱃값에도 공용어를 썼겠죠? 이 나라에서 파는 담뱃값(아래 그림)에는 '담배는 건강에 해롭다(Smoking Kills)'는 문구가 세 가지 말로 모두 등장합니다. 위에서부터 보스니아어, 크로아티아어, 세르비아어입니니다.



일단 보스니아어와 크로아티아어가 똑같다는 건 아시겠죠? 키릴 문자에 익숙하신 분은 세르비아어도 똑같다는 걸 아셨을 겁니다. 로마자 'Pušenje Ubija'를 키릴 문자로 바꾸면 'Пушење Убија'가 되니까요.


네, 셋 모두 그냥 똑같은 말입니다. 이 표기만 우연히 똑같은 게 아니라 세 언어가 사실상 똑같은 말입니다. 사실 1991년까지만 해도 이 세 말은 '세르보크로아트어'라는 단일 언어로 취급했습니다. 이 언어 이름부터 '세르비아+크로아티아'에서 유래했습니다.


1991년이 기점인 건 이해가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진 해이기 때문입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1991년 이전까지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유고슬라비아)에 속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는 '남부 슬라브족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연방'은 "자치권을 가진 다수의 나라가 공통의 정치 이념 아래에서 연합하여 구성하는 국가"(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그러면 이 유고 연방 아래 여러 나라가 있었을 터.


당시 이 사회주의 연방은 △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세르비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등 여섯 개 나라가 뭉쳐 있는 형태였습니다. 구성국은 6개였는데 유고 연방 공용어는 △마케도니아어세르보크로아트어 △슬로베니아어 세 개뿐이었습니다. 슬로베니아와 마케도니아를 제외한 나머지 4개 나라 모두 세르보크로아트어를 쓴다고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1991년부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차례로 독립하면서 유고슬라비아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독립한 뒤에도 연방에 남아 있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이듬해 신(新)유고 연방을 결성했습니다. 이 신유고 연방은 2003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이름을 바꿨으며 2006년 몬테네그로가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다시 나뉘게 됐습니다.

 



그런데 위에 있는 GIF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것처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쪽은 뭔가 복잡한 모양새입니다. 지금도 이 나라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입니다. (브르치코는 공동 행정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에는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살고 스릅스카 공화국에는 세르비아계가 삽니다. 이들이 이렇게 나뉘어 있는 건 종교 때문. 보스니아계(전체 인구 중 48%)는 이슬람, 세르비아계(37%)는 동방 정, 크로아티아계(14%)는 가톨릭을 믿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사실상 같은 말을 쓰면서도 자기가 쓰는 말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국제표준화구기구(ISO)에서는 ISO 639를 통해 언어를 구분하고 있는데 세 가지 언어 모두 개별 언어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006년 세르비아에서 분리 독립한 몬테네그로 역시 몬테네그로어를 공용어로 지정했습니다. 1991년에는 세르보크로아트어 사투리로 묶을 수 있던 말이 개별 언어 4개로 갈라진 셈입니다.



그러니까 이 남부 슬라브족 사이에서 예전에는 '차이는 있지만 같은 말'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는데 이제는 '차이가 있으면 다른 말'이라는 생각이 더 커진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투리와 개별 언어를 구분하는 데 언어학적 기준보다 정치사회학적 기준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경말 vs 홍콩말 혹은 중국은 왜 한자를 못 버릴까?

중국어는 정반대입니다. 중국에서는 지방마다 확실히 외국어 수준으로 서로 다른 말을 쓰는데도 이를 그저 팡얀(方言·방언)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개별 언어를 전부 묶어서 '한위(汉语·漢語·Sinitic Languages)'라는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곳이 홍콩(香港)입니다. 이 특별행정구역에서 헌법 구실을 하는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홍콩 기본법) 제9조는 정식 언어 그러니까 공용어에 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글 번역은 위키피디아에서 인용)


第九條 香港特別行政區的行政機關、立法機關和司法機關,除使用中文外,還可使用英文,英文也是正式語文。제9조 홍콩특별행정구의 행정기관, 입법기관과 사법기관은 중국어를 사용하는것 이외에도 영어를 사용할 수 있으며 영어 역시 정식 언어이다.


그럼 이때 중국어는 무슨 말일까요? 이게 중요한 건 홍콩 사람들 대부분(2011년 기준 89.5%)은 광둥어(廣東語) 또는 월어(粵語)라고 부르는 말을 쓰기 때문입니다. 푸통화(普通話) 또는 만다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표준 중국어 구사자는 1.4%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광둥어와 표준 중국어는 간단한 표현조차 다른 일이 많습니다. 쓰는 글자체도 다릅니다. 예컨대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표준 중국어에서는 간체자로 '谢谢'라고 쓰고 /씨에씨에/처럼 소리냅니다. 광둥어에서는 정체자(번체자)로 '唔該'라고 쓰고 /음꼬이/로 읽습니다. 홍콩에서는 상황에 따라 '多謝'라고 표현할 때도 있는데 이때는 /뚜어지에/로 소리가 납니다.


그렇다면 저 홍콩 기본법에서 규정한 중국어는 도대체 어떤 쪽일까요? 정답은 '광둥어와 표준 중국어 둘 다'에 가깝습니다. 홍콩 정부 홈페이지에 가보면 첫 화면에서 영어 버전과 함께 번체판(繁體版)과 간체판(简体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혹시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왜 광둥어판, 표준 중국어판이 아니라 번체판, 간체판일까요? 홍콩 기본법을 눈여겨 보신 분이라면 사실 이 특별행정구에서 사용하게 돼 있는 건 중국어가 아니라 중문(中文)이라는 점을 확인하셨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영어도 영문·英文입니다.)


이때 중문은 중국어 글말(文語·문어)인 백화문(白話文)을 가리킵니다. 백화문은 당나라 시절 우리가 흔히 한문(漢文)이라고 부르는 글말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입말(口語·구어) 사이에 차이가 너무 커서 등장했으며 이후 입말 변화를 반영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한문(혹은 문언문·文言文)은 '옛날 (글)말'입니다. 현대 중국 사람들도 이제 한문을 100% 이해하지 못합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아예 한문 버전이 따로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글말이 입말 변화 속도를 완전히 따라잡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입말을 있는 그대로 적어도 결국 (여기서는) 지방에 따라 서로 다른 글말을 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글말로 의사소통을 할 때도 '표준형'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현대 백화문은 베이징(北京) 방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요컨대 글말로서 표준 중국어는 베이징 방언 입말을 글로 적은 형태입니다.


그런 이유로 광둥어와 표준 중국어가 입말로는 완전히 다른 언어라고 해도 글말로는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한국에서도 실제로 자기가 어떤 사투리를 구사하든지간에 글은 표준어(서울말)에 가깝게 쓰는 걸 생각해 보면 이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홍콩은 99년 동안 중국과 사실상 개별 국가였기 때문에 광둥어 백화문도 따로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홍콩 언어 정책을 '양문삼어(兩文三語)'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글말은 두 개(중문, 영문)인데 입말은 세 개(광둥어, 표준 중국어, 영어)라는 뜻입니다. 단, 홍콩에서는 번체자가 기본이기 때문에 글자가 헷갈릴 수 있으니 글말 버전을 따로 만들어 둔 겁니다.



다른 중국어 방언 화자도 비슷한 사정입니다. 소리로는 베이징 방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대부분 글자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국 TV를 보면 분명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데 아래 계속 한자로 자막이 나오는 거 보신 적 있으시죠? 이렇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 숨어 있습니다. 중국이 표의문자(表意文字 좀 더 정확하게는 표어문자·表語文字)인 한자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중국어는 공통으로 쓰는 글말까지 마련하면서 각 방언을 개별 언어가 아니라 사투리로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시 언어학적인 기준이 아니라 정치사회학적 기준에 따라 광둥어는 개별 언어라기보다는 중국어 사투리에 가깝습니다.


중국어만 글말로 표준형을 지키는 건 아닙니다. 사실 영어도 그렇습니다. 영어도 전 세계에서 두루 쓰고 있는 만큼 같은 낱말도 서로 다르게 소리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대신 표기법·스펠링 차이가 소리 차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래서 'knight'에서 'k'처럼 소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글자를 남겨두고 있는 겁니다. 원래는 저 낱말을 /크나이트/처럼 읽었습니다.



도대체 그렇다면 제주말은?

결국 어떤 말이 사투리인지 아니면 개별 언어인지는 그 말을 쓰는 사람들 판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힘 있는 사람들이 이를 결정하는 일이 많습니다. 언어학자 막스 바인라이히(1894~1969)는 이를 "언어란 육군과 해군이 있는 사투리다(A language is a dialect with an army and navy)"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주말은 실제로 육지말과 의사소통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떠나 별개 언어라고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힘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은 한국어를 "한반도 전역 및 제주도를 위시한 한번도 주변의 섬에서 쓴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주말도 한국어라고 못을 박고 있는 셈입니다.


중앙아시아 한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륙국인) 카자흐스탄에 해군이 없어서가 아니라(…) 많은 한국어 화자가 고려말을 그저 한국어 사투리라고 생각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그러니 제주말과 고려말이 통역 없이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두 말 모두 한국어 사투리라고 취급하는 게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긴 글 읽어 주셔서 아슴채이오(고려말로 '고맙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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