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 따갑고 바람은 차다.
창문을 열지 않아 답답해진 버스 속 공기, 거기에 축축한 너의 기억이 젖어 든다.
올곧게 내 심장으로 들어가려던 네 서툰 솜씨는 내 목젖을 건드리고 결국엔 편도선마저 붓게 만든다. 세찬 바람은 내 오른쪽 귀를 끊임없이 할퀴고 들어와 두개골 속을 휘이 맴돌다 다시 오른쪽으로 도망쳐 버린다.
아프지 말자, 때로 감기는 마음이 지쳤음을 나타낸다. 너를 잡지 못하는 나는 내 침마저 마음대로 삼키지 못하고 쓴 약 한봉지를 위해 먹기 싫은 된장국에 찬밥을 만다. 생선을 고른다는 문제는 경제의 문제이기보다는 취향의 문제다. 적어도 아침 식탁에까지 고등어 구이가 올라온다면 말이다.
몸을 움크리고 문틈으로 몰래 너를 훔쳐 본다. G·I가 되어 네게 상륙할 수 없는 난 노르망디에도 가지 못한다. 이지스함 한 척 가지지 못해 늘 불안스러워 하면서도, 내가 지키고 싶은 건 네가 아닌 모순의 가능성, 도저히 난 창을 갈아야 할 이유를 가지지 못한다.
혼자서 돌아와야만 하는 먼 길, 난 너의 집 앞에서도 멈추지 못한다. 한 시간 이십 사분의 거리, 너는 띄어쓰기라는 낱말은 붙여 쓴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난 매일 너의 이름을 쓴다. 그것은 다만 낙서, 낙서, 낙서.
정말이지 감기엔 너무 많은 상상이 따른다.
─── klni 註 ────────
이 글 자체는 스무살 때 썼다. 2005년 4월에는 이 글에 코멘트를 이렇게 썼다.
혹시, 사귀기엔 너무 아까워 아껴둔 사람이 있는지?
내겐 둘이 있었다.
한명은 이 글의 주인공이었고
한명은 요즘 내가 '그'라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이 글의 주인공은 내가 사귀자는 소리를 꺼냄과 동시에 멀어졌고
또 한명은 결국 그렇다 ㅡ,.ㅡ
이때 정말 지독한 감기몸살에 걸렸더랬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나 요즘 아프고 싶다.
그런데 2010년에는 이 글 주인공이 누구였고 '그'는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