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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포경수술이 돌연사 부른다


'고래는 언제 잡아줘야 하는가?'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아빠는 가끔 저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출산 고통을 아빠는 영원히 모르지만 엄마는 아는 것처럼 포경수술 고통은 엄마는 영원히 모르지만 아빠는 (대부분) 아니까요.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포경수술을 해주는 게 좋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산모 병동에서도 신생아 포경수술 광고를 찾아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통증이 뭔지 아예 모를 때 수술을 해주는 게 좋다는 겁니다. 


저도 아들이 태어났을 때 광고를 보고 잠깐 고민했지만 '자기 몸이니까 그래도 나중에 아들에게 의견을 물어볼 수 있을 때 결정하자'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러기를 잘했습니다. 포경수술이 신생아 돌연사 증후군(SIDS·Sudden Infant Death Syndrome)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영국 셰필드대 에란 엘하이크 박사는 영아 사체 부검이 의무인 15개 나라 데이터를 가지고 포경수술 비율과 신생아 돌연사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SIDS로 사망하는 젖먹이 중 약 60%가 남자 아이니까 아들과 딸의 차이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겁니다. 엘하이크 박사가 전 세계 15개국 데이터를 토대로 선형 회귀 분석을 실시한 결과 아래 그림처럼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포경수술 비율(Male Neonatal Circumcision Rate)가 신생아 1000명당 SIDS 발병율 사이 상관계수(r)는 0.7로 나타났습니다. 보통 지능과 학업성취도 사이 상관관계가 이 정도 됩니다. 엘하이크 박사는 "포경수술 비율이 10% 늘어나면 신생아 1만 명당 1명 꼴로 SIDS 발병율이 올라가는 것"이라며 "안전한 신생아 포경수술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생아에게 포경수술이 안전하지 못한 제일 큰 이유는 출혈 때문입니다. 신생아는 전체 혈액이 11온스(약 312g)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포경수술을 받을 때는 1~2온스(약 28~57g) 정도 피를 흘리게 됩니다. 2온스를 기준으로 하면 전체 혈액 중 18.3%가 한 번에 빠져 나가는 것. 


성인 남성은 보통 자기 체중 가운데 8% 정도가 혈액입니다. 70㎏을 기준으로 하면 5.6㎏ 정도가 혈액인 셈. 이 중 18.3%는 약 1㎏ 정도 됩니다. (전혈)헌혈 때 보통 400㎖(≒400g)를 뽑으니까 신생아가 포경수술을 받는 건 성인 남성이 헌혈을 2, 3번 연속으로 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인 셈입니다.


몸에 피가 부족하면 혈압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를 상쇄하려고 심장이 더욱 열심히 뜁니다. 아직 심장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라면 심장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겁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원래 포경수술이 그렇게 꼭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남성 99%는 20세를 넘기기 전에 자연적으로 포경상태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예전처럼 포경수술을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꼭 포경수술을 시키겠다면 말릴 수는 없는 노릇. 다만, 이때도 아들이 좀 큰 다음에 하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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