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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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

지금도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20대 초반까지 나는 속에 어떤 말을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사람이 싫으면 면전에다 대고, 나 당신 싫어한다고 말하던 타입.

상당히 재수 없는 성격으로 보였을 테고 사실이 그랬지만, 너무 싫은데 굳이 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누군가 좋을 때도 마찬가지. 어떤 의미로든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그 감정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는 그만큼 순진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솔직함은 때로 무모한 어리석음이 반영된 결과니까. 그래도 확실한 한 가지는, 남의 말에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여전히 '남의 말'에 집착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는 예전처럼 '넌 이래서 싫어.' 하고 면전에 대고 말하지는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이제는 그런 사람들조차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다만 내가 남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굳이 나의 말이 '남의 말'이 되는 걸 원치 않을 뿐이다. 분명 그 사람은 자기 처지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을 테니, 혹시 그 사람이 나의 말을 '남의 말'로 받아들여 고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다. 나에 대한 '남의 말'을 꾸준히 전하는 A라는 친구가 있다고 치자. 그럼 A는 분명히 나의 말을 그 '남'에게도 전할 가능성이 높다. 내 앞에서 '우리 친구잖아. 나 못 믿어?' 하고 말한다면 '남' 앞이라고 왜 아니 그러겠는가?

아니, 이런 성격이 큰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친구들은 '남의 말'에 꽤나 신경을 쓰면서 삶을 꾸려나가는 타입이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뿐이다. 물론 제 3자에 대한 '남의 말'에만 신경을 쓰는 타입이라면 곤란하겠지만, 이런 친구들은 대개 자신에 대한 '남의 말'에도 신경을 쓸 확률이 높다. 남들도 자신과 같이 생각하리라는 건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관점 가운데 하나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A가 놀라운 '활약'을 펼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정말 A에 관한 '남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조심스럽다. 자신에 대한 '남의 말'을 '고맙게도' 내게 '몰래 전해준' A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것이 비단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게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A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A의 존재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A는 어디서 그런 소식을 다 듣는대?" 혹은 "내가 너에 대해 뭐라고 얘기했다고 A가 그러든?" 같은 이야기들. 그렇게 자기 자신만 모른 채 A는 '남의 말'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런 것을 소기의 목적 달성이라고 불러야 할까?

물론 A 자신은 본인이 그런 타입의 사람이라는 걸 쉽사리 알아채지 못한다. 그건 A의 잘못이라기보다 적어도 우리 문화권에서는 어떤 인간 본성에 가까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A는 A'를 낳고, A'는 A''를 계속해서 낳는다. 그렇게 우리의 인간관계는 '남의 말'로 점철되고, 사실 별 것도 아닌 사소한 말이 왜곡되고 와전되어 우리 주위를 부유하고 있다. 쑥덕쑥덕.

물론 내 주변에도 A타입으로 분류되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분명 어디에선가 나 역시 A타입으로 분류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히 A타입의 사람에 대한 '남의 말' 만들기에 동참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항변하고 싶다. 적어도 나는 먼저 A타입이 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이다. 물론 A'라면 할 말이 없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하긴, 어쩌면 모두들 A타입은 부인해도 A' 앞에서는 부끄러워지는 게 현실이던가?

'남의 말'을 전하는 사람 혹은 나의 말을 '남의 말'로 만드는 사람들 정말, 참,  싫다. 당신이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내게도 그 정도 자유는 좀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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