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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더플코트 그리고 오타쿠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씨와 나 사이에 유이(有二)한 공통점이라면 쥐라 불리는 친구가 있다는 것과 더플코트(가끔 더블 코트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duffle coat)를 몹시도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한 잡지에 여성이 본 최악의 남성 NG패션 2위에 더플코트가 올랐다는 것은 나뿐 아니라 무라카미 씨에게도 슬픈 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이 잡지가 더플코트를 혹평한 이유는 '오타쿠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깔끔하게 소화하는 사람이 일부(イメージ的にはオタク要素が強く、これをオシャレに着こなせる人はほんの一部)'이기 때문이란다.

두 번째 이유라면 사실 이해가 간다. 살이 곰만큼 쪄버린 이후 나 역시 한 동안 더플코트 입기를 꺼렸던 게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더플코트가 오타쿠스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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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을 작은 지현에게 던지자 이렇게 되물어 왔다. "그거 보푸라기 나면 좀 어린이 같아서, 꼭 어른이 어린이 행세 하는 거 같이 느껴져서, 오타쿠 같다고 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계속해서 "디자인도 좀 어린이스럽고, 나름 큐트하긴 하지만"하고 덧붙였다.

그리고 무라카미 아저씨가 들으셨으면 안 됐을 한 마디로 마무리. "너무 늙은 아저씨가 입으면 좀 토 쏠릴 꺼 같기도 해. 피터팬도 아니고."

하긴 외모 때문에 무라카미 씨를 오타쿠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다니 역시 더플코트는 오타쿠스럽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은 인정하기가 어렵다. 잘 알려진 것첨 더플코트는 세계 대전 때 영국 해군이 방한복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 전에는 벨기에 해부들이 방한복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더플코트는 분명히 처음에 어른들 입으라고  만든 옷이라는 이야기다.

트렌치코트 역시 비슷한 기원으로 시작됐다. 트렌치코트의 대명사인 버버리 코트도 사실 영국군 장교 우의(雨衣)가 이어진 형태다. 그런데 아무도 버버리코트를 보고 오타쿠적이라거나 유아스럽다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에는 '양산(量産)' 정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버버리 스타일을 입는 중학생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중학생이라면 누구나 더플코트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교복과 세트로 된 코트로 더플 스타일을 선택하는 학교도 꽤 있는 형편.

이건 사실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내가 지나가는 사람을 한명씩 붙잡고 사실 더플코트는 어른이 입는 옷이라고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환갑이 넘어서도 더플코트를 입겠다는 내 생각은 확실히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쥐가 보낸 문자 역시 현실의 냉정함을 내게 일러준다. "오랜만에 친구 만났는데 완전 아저씨 됐더라. 넌 꼭 운동해라. 이미 아저씨 된 거 더 아저씨 안 되게..."

그렇다. 이제는 입고 싶은 옷도 마음대로 입기 힘든 나이가 되고 만 것이다. 다행인 건 버버리 스타일도 퍽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200만 원짜리 코트를 마음대로 살 만큼 재력가는 되지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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