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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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질 왜 했나 싶은 순간

조금 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자기 아들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그 죽음을 널리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장애인이신 아버님 큰 소리로 흐느껴 우시면서 꼭 언론에 보도돼 온 국민이 함께 슬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시더군요.

사건이 발생했던 건 1월이었습니다.

경찰대 수석 입학생이던 아들이 아주 간단한 치과 수술을 받던 도중 식물인간이 됐습니다. 나중에 추가 취재를 해 본 결과 턱에 있는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는데 의료진이 무신경했던 곳.

당시 강남 쪽에 이런 유사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제가 이 스토리가 안타까웠던 건 이 친구가 정말 없는 집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자수성가한 케이스였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나 존재할 법한 케이스였습니다. 형제들이랑 같은 방에서 자면서도 과외, 학원 하나 없이 공부했고 학교 영어 교육만으로 토익 만점 받는 케이스.

이 가족들은 당장 억울한 게 무엇이고,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올바른 길인지 몰랐습니다.

덕분에 언론에 자기들 생각을 너무 많이 밝혔고, 병원 측에서는 변호사를 통해 반박 논리를 마련했습니다.

"의사 말로는 살아날 확률이 1%고, 정상으로 돌아올 확률은 0.00000001%라고 한다. 그래도 0이 아닌 이상 희망을 잃지 않겠다"며 울먹이시던 어머니. 전형적인 아줌마 파마에 어눌한 충청도 사투리.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우리 어머니' 그 자체였습니다.

함께 뜨겁고 서러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님 전화를 받고 나서 "아, 이건 얘기가 안 되는데…" 하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그리고 문득 '지금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하고 커다란 회의가 몰려들었습니다.

안양에서 벌어진 토막살인.

저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단독'을 포기했더랬습니다.

아무도 없는 시간 혼자 현장에 나가 쓰레기통을 뒤졌습니다. '뻗치기'하는 기자가 흔히 하는 일. 그리고 쓰레기 봉투 속에서 엄마가 쓴 편지가 찢긴 걸 찾아냈습니다.

이미 조각조각난 딸이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며 어머니가 눈물로 쓴 편지를 어찌 '알 권리'라는 이유로 세상에 공개해야겠습니까. 딸이 숨졌다는 소식이 들리자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려진 애끊는 마음.

제 아무리 단독과 특정으로 말하는 기자라지만 정말 그 짓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같은 이유로 기자들이 며칠 밤을 집 앞에서 지켜도 나오지 않던 어머니의 첫 외출 때도,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 기분을 물어야 알까요. 아니, 듣는다고 알 수나 있을까요.

하지만 역시나 어디선가 이 편지를 찾아 기사를 썼고 '너는 현장에서 뭐했냐? 깊이 반성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네, 전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순간이 또 온대도 저는 '깊이 반성하라'는 지시를 받고 말겠습니다.

이렇게 점점 '사건·사고'에 '사람'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는 제 자신이 싫어져 갑니다.

세상엔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도 많은데… 70~80대 할머니들이 디지털 캠코터 들고 잊혀진 광복군을 찾아 중국 일대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게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왜 이야기가 안 되는지.

왜 납치로 기소도 안 될 사건을 모든 언론이 납치 미수라고 보도하고 있는지. 그래서 부모들은 왜 학교 앞에서 애들을 기다려야 하는지.

돈 없고 빽 없는 청년은, 부모님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동시통역사라는 자기 꿈을 버리고 경찰대를 지망했던 수석입학생은 왜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구역질 나는 정치면이야 스킵하면 그만이지만, 스스로 진정 억울하고 가슴 아픈 일을 쓰지 못할 때, 단지 '티베트'라는 낱말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기획이 킬될 때, 내가 이 짓을 왜 했나 싶습니다.

그냥, 물 먹은 날 아침 푸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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