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assignment Scribble/.OLD

벽지의 비유

내가 가진 고민이라 불리는 것들,
글쎄 많은 것들이 곁에 다가왔다가 사라진 것 같다.

더 무게만 늘어 달아나버린 녀석들도 있었고,
잘게 분해되어 내 성장이란 체에 걸러질만한 찌꺼기만 남긴 놈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난 이제 더이상 고민 같은 놈들과 맞딱드려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어차피 삶은 벽지 같은 것이다.

늘 나를 도배하고 있으면서 선택의 기로에선 언제나 망설이게 한다.

언제나 거기에 머무르기에 쉽사리 눈치채지 못하지만 벽지는 서서히 색이 바래간다.

오랜동안 붙여 놓았던 액자 하나, 거울 하나만 떼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액자나 거울 같은 것이 고민이다.

삶을 바래지 않게끔 하는 것, 그러면서 자신 또한 벽지의 일부가 되는 것.

아니, 벽지보다 더 벽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것.

똑같은 무늬만 계속되는 벽지에 좀 다른 자극을 주는 것.

그런 게 고민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물론 벽지 색이랑 안 어울리는 걸 걸면 오히려 배경을 망치듯이 고민 또한 쓸데없는 걸 붙잡고 늘어지면 남들과 다른 삶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계나 거울처럼 걸려있으면 좋은 것이 없을 때 불편한 것처럼 한번 쯤은 고민하고 넘어가봤어야 할 문제들을 고민하지 않고 넘어갔다면 삶에 더 어려움이 많을 수도 있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한가지다.

어차피 고민은 자신의 것이고 답을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카운셀링 잘 하는 아줌마가 말했다.카운셀링의 가장 기본은 그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하지만 자기 자신한테 스스로는 할 수 없는 말을 대신 해주는 거라고.

그건 분명 답을 알기는 하는데 말 할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당연히, 내게 주어진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나로선 그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그치만 친구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자신의 속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말만이 정답이라는 사실이다.

나도 불안하다.그치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이랑 니가 듣고 싶은 말이 다를지도 모르겠구나.

그냥, 일단 주어진 지금에 최선을 다하자. 그 다음에 뭔가 보이고 들리겠지.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 kini 註 ────────

스무살 때
나 그때 무슨 고민을 했더랬나...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일로 고민하잖아..
달라지 않는 것도 있는 모양..

하지만, 이젠 영원히 포기해야 할 모양..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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