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assignment Scribble/.OLD

4월 어느 해맑은 아침 '상실의 시대'를 읽는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7년 전에 쓴 글을 생계형 야근중 데스킹

4월 어느 해맑은 아침 노선번호 7770 버스 안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는 여자 아이와 엇갈린다. 솔직히 그렇게 예쁘지는 않지만 눈에 띄는 데가 없는 것도 아닌 아니다.

배꼽이 살짝 드러나는 분홍색 쫄티. 등에는 유행이 좀 지나긴 했지만 마젠타가 기분 좋게 감도는 키플링 가방을 맸다. 긴 다리엔 짙은 청색이 멋지게 늘어진 나팔바지가 감겼고 아디다스 제품인 감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상투적이게도 배꼽 옆에 조그만 흉터가 있었고, 피부가 그리 좋지 않은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아주 나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나이 또래에 그 정도 피곤이 붙어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벌써 서른에 가까울 테니 말이다.

아니, 솔직히 그녀가 몇 살인지는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쉽게 늙거나 늙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여자 아이라고 하기에 모호한 존재다.

하지만 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눈에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그녀 손에 들린 '상실의 시대'가 이건 현실이 아니다 싶을 만큼 커다란 크기로 시야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 곧바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 책을 처음 읽는 걸까.' 아니면 '여러 번 반복해 읽는 걸까.'

처음이라면 다분히 매력이 떨어진다. 운이 없어서 그 책이 손에 늦게 들린 거라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그런 책은 스무 살 즈음에 읽어야 제격이다.

여러 번 읽는 거라면 얘기는 좀 다르다. 똑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데는 아무 흥미가 없지만 그렇게 하는 여자 아이는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신도 좋아하는 여성 타입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발목이 예쁘고, 쌍꺼풀 없는 길고 가는 눈에, 손가락이 절대적으로 예쁘고, (나와 정반대 취향이지만) 편식하는 여자 아이에게 끌린다.

이건 내 기호(嗜好)이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취향이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다 곁에 앉은 여자 아이 발목에 넋이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기호를 유형화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나를 반하게 했던 여자 아이 발목이 참 깨끗했다고 하는 건 이제는 전혀 떠올릴 수가 없다. 아니, 발목이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는지 어땠는지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건 지독하리만큼 납작한 가슴을 가진 여고생이었다는 것뿐이다. 어쩐지 그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오늘 아침 '상실의 시대'를 읽는 여자 아이와 버스에서 만났단 말이야"하고 누군가에게 말한다. "흠, 예뻤어?"하고 그가 묻는다. "아니야, 그렇진 않아." "그럼, 손이 아주 예쁜 여자였겠군." "글쎄, 생각나지 않아. 손톱이 어떻게 생겼는지, 손가락이 굵었는지 가늘었는지 전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이상한 일이군." "이상한 일이야."  "그래서,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 말을 건다든가, 뒤를 밟는다든가 말이야." "아니, 그저 엇갈렸을 뿐이야. 버스에서 만났다가 사당에서 사라지더니 낙성대 마을버스에서 다시 나타났다고."

그녀는 호암 교수 회관에서, 나는 기숙사 삼거리에서 각각 내렸다.


제법 기분이 좋은 4월 아침이다. 3분이라도 좋으니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몹시 일상적인 그녀 이야기를 듣고 내 일상도 털어놓고 싶다.

무엇보다도 2003년 4월 두 번째 월요일, 그 해맑은 아침에 우리가 7770 버스에서 엇갈리게 된 운명의 경위를 한번쯤 알아보고 싶다.

우리는 벚꽃이 가득한 버들골에 앉아 싸구려 김밥을 나누어 먹는다. 내게는 마지막인 이 비참의 찬란을 이야기하고, 녹두에 내려가 비디오방에서 '바이 준' 같은 영화를 본다. 보드 카페에 가서 ‘카탄’을 즐기고 '킹스 크로스'에 들러 위스키 온더락스나 뭔가를 마신다. 잘만 하면 그녀 손을 빌어 내 성욕을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화창한 봄날을 함께 하기에 성욕이란 너무도 귀찮은 놈이다.


참 쓸모없는 상상이 언어 철학 수업 시간을 가득 채운다. 그녀는 이미 완전히 사라진 후다.

아니, 처음부터 나는 그녀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저 수업 시간 내내 사이코 같은 학생과 그 녀석을 다룰 줄 모르는 교수가 나누는 지루한 언쟁을 듣다 보니 어처구니없게 그녀가 떠올랐을 뿐이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저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는 여자 아이였을 뿐 내 100% 여자 아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설정부터 '상실의 시대'라니 약간 한심하지 않은가. 내게는 그저 시간을 죽일 방법 하나가 필요했던 것뿐이다. 몽상이라든지 공상, 그런 시간 때우기 말이다. 이 지점에서 모든 서사가 출발한다.


자,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더라면 좋았을까?

"안녕하세요. 표정에 피곤이 가득 차 있는 것 같네요."  이건 너무나 바보스럽다. 마치 '도나 기에 관심 있으세요?' 같지 않은가.

"미안합니다. 저도 그 책을 읽고 있습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 역시 같은 정도로 바보스럽다. 거짓일뿐더러 그녀가 손에 든 것만 보았을 뿐 읽는 건 본 적이 없다. 그 책이 재미있었던가? 이제 와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솔직하게 말을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당신이 시간을 때우기 위한 공상의 상대로 선택되었습니다." 아니, 틀렸어. 어차피 그녀는 이런 얘기조차 듣지 못한다. 이 모든 상상은 내 머릿속에서만 진행될 뿐 그 외연이라든가 하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가 않는다. 어차피 이 모든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서만 벌어지는 것이라 그녀에게 알릴 방법도 없다.

"당신이 시간을 때우려고 내 생각을 한다는 건 그다지 기분 나쁜 일만은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건 당신 머릿속에만 있으니 내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괜찮다면 저를 선택하지 않으시는 게 나을 듯하네요, 미안하지만…" 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면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계속 펼 것이다. 상상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나는 끝내 수음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내 나이 벌써 스물넷, 이런 건 나이와도 별 상관없이 지속되는 것일까? 그러니까 욕망이라는 것 말이다.


버들골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서 나는 다시 그녀와 엇갈린다. 따스하고 조그마한 공기덩어리가 살갗에 와 닿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 위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언저리에는 벚꽃 향과 잔디 향이 넘실거린다. 고전 소설 묘사법에 충실하게 쓰면 딱 좋을 평범하고 화창한 봄날 풍경.

그녀에게 말을 걸 수는 없다. "그녀 가방 지퍼 사이로 아직 우표를 붙이지 않은 흰 사각 봉투가 삐죽이 빠져 나와 있다"고 원문을 베끼고 싶지만 이 시대에 그런 낭만을 즐기는 여자 아이가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설사, 있다고 해도 그런 아이라면 더 이상 매력적인 설정이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렇게 나는 그녀의 피곤함을 설명할 방법도, 그녀의 비밀에 대해 언급할 기회도 모두 잃어버린다. 상관없다. 처음부터 그녀의 비밀은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서사 방향과는 상관없이 서사, 즉 상상을 하는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뿐이다.

아니, 이렇게 쓰고 나니 사실 약간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상의 전개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몇 걸음인가 걷고 나서 뒤돌아보았을 때, 그녀 모습은 마을버스 창틈으로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7년이 지나 다시 쓰는 지금도 그때 그녀를 향해 어떻게 말을 걸었어야 했는가를 확실히 알고 있지는 못하다.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도 긴 대사이므로 틀림없이 제대로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말을 너무 길게 내뱉는 타입이다. 이런 식으로 쓰거나 말하는 것은 언제나 효율적이지 못하다.

아무튼 그 말은 "우연히 만났다"로 시작해 "등장하지 않았다"로 끝난다.


우연히 그녀를 만났다. 혹은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

이런 조우(遭遇)는 100% 여자 아이를 만난다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은 4월도 아니거니와 나는 이미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친구 여자친구였다.

이번에도 사당역 지하도 안이었다. 느긋하게 긴 통로를 걸어 4번 출구를 향하는데 그녀가 먼저 알은체를 했다.

그녀는 내 이름을 너무 또렷하게 기억했다. 나는 '애석하게도'인지 혹은 '당연하게도'인지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대충 중성적인 이름, 그러니까 정원이라든가, 정진이, 진현이, 한별이, 규인이(?)처럼 남녀 모두 쓸 수 있는 이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종덕'이라는 여자애도, '영순'이라는 남자애도 있으니 그렇게 이상하달 것까진 없지만…

그런데 애써 이름을 기억하는 것과 그녀를 만난 것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 그래서 그냥 '정원'이라고 치자.

그 아이와 친구는 내 주변에서 유일한 모범생 커플이었다. 서로 모의고사 답안지를 돌려 보고 똑같은 문제집 두 개를 사서 포스트잇 따위로 교환일기까지 덧붙여 번갈아 보는 그런 깜찍한 구석이 남아 있는 커플 말이다.

그때는 '좀 오버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그것도 그때가 아니면 평생 하지 못할 일이이라는 생각에 약간은 아쉽기도 하다. 물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런 연애를 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아련히 그 시절이 그리운 것뿐이다.

그때 나는 공부 잘하는 여자 아이한테는 아무 매력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부터도 공부는 썩 잘하는 편이어서 그런 인간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학습의 연장에서 매력을 발견하는 게 아니었다. 어떤 종류든지 즐거움 때문에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 == 답답하고 재미없는 아이였다. 내가 매력을 느꼈던 아이들은 대개 '날라리 족속'이었다.

물론 그녀는 공부 잘하는 아이치고는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쌍꺼풀이 또렷한 동그란 눈매. 적당히 통통해 귀여움을 안기는 볼살 (이제는 젖살이 빠졌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적당히 오뚝한 콧날에, 도톰한 입술, 깨끗하고 하얀 피부, 해맑은 표정에 구김살 없는 성격, 가늘고 흰 긴 다리,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옷차림 등. 지금 언뜻 떠오르는 그녀는 이랬다.

사건은 어느 봄날에 일어났다. 그날 친구 녀석들과 그 아이 친구들이 함께 당시 유행하던 '소주방'에서 어울렸다.

아주 약간 술에 취한 나는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달빛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예뻤고, 별들도 반짝였다. 기온도 적당해 밤 산책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나는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일부러 길을 돌았다. 징검다리처럼 놓인 작은 돌다리를 밟아 냇가를 건너 집에 갈 생각이었다. 한 걸음을 떼는 순간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얌전하게 내게 걸어오고 있는 그 아이가 보였다.

우리는 함께 밤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둘이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한참을 걸었지만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여자 아이와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집 앞 대문 앞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그녀가 '일찍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니면 나랑 조금만 더 같이 있으면 안 될까'하고 말했다. 계속 걷기만 할 수는 없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로 갔다.

그녀와 나는 벤치 끝에 서로 떨어져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말 소리는 거의 없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던 건지 혹은 여자 앞에서는 수줍음이라는 게 남아 있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엔 남이 말한 걸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졌던 건지, 대화 내용이 별로 기억나지 않지만 다음 대화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민기(친구 이름이다.) 공군사관학교 들어가고 그러면 지금처럼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면 멀어져서 결국엔 헤어지게 되는 거겠지?"

솔직히 그때 여자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한번도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여자 아이하고는 조금 같이('가지고'가 아니다.) 놀다가 언젠가는 헤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물음이 내겐 제법 충격이었다.

그밖에도 진로(소주가 아니다.)라든가, 성적 고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들 인생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녀에게 약간의 매력을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공부 잘 하는 여자 아이와 만나면 이런 고민을 들어줘야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뺀지를 안 먹을 수 있나(이건 정말 당시 우리의 최대 고민이었다), 남자가 만져주면 가슴이 정말 커질까(나는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과학적인 근거 같은 것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 중절수술비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떼인 돈도 제법 되는 것 같다), 이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민 말이다.

달무리 밖으로 여전히 별은 깨끗하게 반짝였다. 나는 계속 그 아이 말을 들었다. 계속 차원이 다른 물음이었다. 술기운이 오른건지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힘겨운 듯 내 어깨에 기대기도 했다. 그러면서 집에 가자는 제안은 거절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

곧 잠든 그녀 얼굴이 내 어깨로 기울었다. 조심스럽게 팔을 빼 어깨를 감샀다. 그제야 하늘에는 먹구름이 조금씩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잠들어 버리고 나서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별을 바라보면서 무엇인가 내가 알아내야만 하는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그게 우주적 기적은 아니었지만, 그게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일을 계기로 조금쯤은 삶이 달라지리라는 기분은 틀림없이 들었다. 실제로도 분명 그랬다.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그 아이 얼굴을 천천히 관찰했다. 예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얼굴을 꼼꼼히 살펴본 건 처음이었다. 작고 동그란 얼굴 속에 깃들어 있는 알 수 없는 불안감, 웃을 땐 그렇게도 예쁘더니 살짝 눈물이라도 맺혀 있을 것만 같은 긴 눈매, 날렵할 콧날의 위태로움이 가라앉는 도톰한 입술.

그 입술. 어쩌면 살짝 입이라도 맞춰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건 소설적 진술이 아니라, 정말로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대체로 용기가 없는 편이지만, 때로는 종잡을 수없을 만큼 무모하기도 하다.

분명한 건 그 아이를 흔들어 깨운 뒤 최대한 다정한 몸짓으로 집 앞까지 데려줬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가방에서 '상실의 시대'를 꺼내 그 아이에게 건넸다.

어쩌면 "심각해진다고 반드시 진실에 가까워지지는 않는 것이다"라는 구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당역에서 우연히 만난 게 그 날 이후 첫 번째 만남이었다.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민기는 공사를 마치고 공군 소위로 임관했고 이제 그 아이는 검은 치마 정장이 퍽 잘 어울리는 직장인 됐다.

나란히 7770 버스에 타서 나란히 앉아 집으로 향했지만 이제 집은 서로 퍽 멀었다.

먼저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연락처를 받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어쩐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담배 한대를 피워 물고 긴 한숨을 내뿜었다.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4월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하늘이었다. 우연이 허락하지 않는 한 그것이 그녀와 만난 마지막일 것이다.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겠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슬펐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조금은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글에는 결국 한 번도 정원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다.


맞다. 어쩌면 이렇게 공상만 하고 있는 대신 나는 그녀에게 혹은 그 누구에게라도 어떤 식으로든 말을 꺼냈어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편보다는 그쪽이 낫다.

언제나 내 깨달음은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필요로 한다. 그렇게 언제나 나는 경험주의를 지지하게 되고 만다.

댓글,

Scribble/.OLD | 카테고리 다른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