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시 37분 대전발 수원행
너무 무뎌져버린 내 세반고리관 속의 방향 지시계가 이제서야 북쪽을 가리킨다. 낡은 구둣발에 자근자근 밟히며 걸어 온 바지 끝자락에 뭍은 흙을 처음으로 털어낸다. 또 엉뚱한 사랑에 빠지려 하는 거냐고 너는 묻는다, W에겐 J를, J에겐 H를, H에겐 W를 이야기하며 하루를 보내야만 할 거냐고 너는 물어온다. 낯선 외국인에 의해 점령당한 간이 식당칸 한 구석에서 먹는 김밥처럼 적당히 나의 목을 메여온다. 연결 칸 계단에 앉아 차가운 신문지를 접어 올리면서 얼핏 든 졸음의 원망보다, 사랑하면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거라는 너의 말대로 떠오르지 않는 너의 얼굴 때문에, 당분간 다시 꿈꿔도 좋다는 너의 승인장처럼 난 결코 값싸지 않은 너의 친절을 다시 한번 기다린다. 이번엔 떠나지 말아야 한다. 환상이란 것도 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