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을 읽읍시다 #117 택시운전사 김사복은 최순실과 어떻게 연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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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뉴욕에는 토네이도가 불어온다고 했던가. 영화 '택시운전사'가 뜨면서 재조명받고 있는 실존 인물 김사복 씨도 한국 근현대사에서 '나비효과'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가 외국인 전용 콜택시를 가지고 있었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탄핵이 됐달까. 일단 다음부터 이어지는 글은 어디까지나 '유우머'임을 밝히고 시작한다.


1974년 8월 17일자 동아일보는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범인인 문세광(당시 23)이 일본에서 입국해 범행을 저지를 때까지 동선을 추적하고 있다. 입국 후 줄곧 일본인 행세를 하고 있던 그는 사건이 벌어진 광복절 아침 숙소로 묵고 있던 서울 조선호텔에 '리무진 한 대를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조선호텔에는 당시 리무진이 없었는데 때마침 팔레스 호텔 소속 콜택시가 손님을 태우고 조선호텔에 도착했다. 문세광은 이 택시를 타고 국립극장에 가서 권총을 쐈고 결국 육 여사가 목숨을 잃는다. (문세광이 원래 노린 타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예상하시는 것처럼 팔레스 호텔 소속 콜택시 주인이 김사복 씨였다. 당시 동아일보에 따르면 당시 이 차는 김사복 씨 대신 '스페어 운전사'였던 황수동 씨(당시 32)가 운전하고 있었다. (김사복 씨 아들 김승필 씨는 아버지 성함이 한문으로 士福이라고 밝혔는데 이때 동아일보 기사에는 砂福으로 나와 있다. 단, 나이와 팔레스 호텔 소속이라는 점은 승필 씨 소개와 일치한다. 동일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다.)


이 저격 사건으로 박종규 경호실장이 잘린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 차지철. 나중에 아버지 박 대통령과 함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흉탄에 세상을 떠난 그 차지철이다. 아니, 만약 육 여사가 이날 숨지지 않았다면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그 모임 자체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계속 살아있었을지 모르고, 그러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가 권력을 잡지 못했을지 모르고, 5·18도 없었을지 모른다. (오해 마시라! 민주화 운동이 없었을 거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게 꼭 그날 광주라는 보장이 없다는 뜻일 뿐이다.) 그러면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취재할 일도 없었을 터. 


이 사건 당시 딸 박 전 대통령은 프랑스 유학 중이었다. 그는 육 여사가 사망한 뒤 들어와 10·26이 있기까지 '퍼스트 레이디' 자리를 대신했다. 어머니를 흉탄에 잃어 넋이 나간 박근혜 전 태통령에게 접근한 (공식 직함으로) 목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최태민이다. 그 딸이 바로 최순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때 영애(令愛)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지 모르고, 최순실을 만나지 않았다면 탄핵 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사건에는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한다. 문세광은 모진 고문에도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때 검사 한 명이 문세광이 즐겨 읽은 소설 '자칼의 날' 이야기로 접급해 결국 입을 열게 만든다. 그 검사가 바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그래서 어떤 택시였는지가 무슨 상관이냐고? 대통령이 '뜨는' 자리라면 경비가 삼엄한 게 당연한 일. 그런데 그는 외국인 전용 콜택시=고급 외제차를 타고 있었기에 요즘으로 치면 AD 카드가 없었는데도 식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AD 카드를 요구하는 경호실 직원에게 문세광은 자신을 '일본대사관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억지로 이름을 붙이자면 '좋은 차 후광 효과' 덕에 문세광은 범행 현장으로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그냥 이 글은 가정(假定)에 가정을 더한 유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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