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새신랑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대(寢臺)에게 고(告)하노니, 인간의 휴식 가운데 가장 종요로운 것이 취침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이 침대는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내 몸 뉘인 지 우금 이십 칠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神)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연전에 우리 부모님께옵서 분가하시매 가구점을 다녀오신 후에, 프레임과 함께 너를 주시거늘, 너는 퐁퐁도 되었다가 프로 레슬링 링도 되었다가 씨름 모래 판도 되었다가, 그 연분(緣分)이 비상(非常)하여 프레임을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年久)히 보전(保全)하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迷惑)지 아니하리요.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너의 인내 갸륵하여 네 몸 위에서 코흘리개 꼬마 스포츠 팬은 육척장신 스포츠 기자가 되었으되, 다행(多幸)히도 가산(家産)이 빈궁(貧窮)치는 아니하여, 너를 버리고 새 침대를 얻으란 말 수 없이 들었지만 친숙(親熟)에 마음을 붙여 널로하여 피너츠 캐릭터 라이너스의 담요 삼아 시름을 잊고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永訣)하니, 오호통재라. 이는 귀신(鬼神)이 시기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침대여, 어여쁘다 침대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내 몸 뉘었을 때 딱딱하고 무르기가 꼭 내 마음과 같은지라. 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놓은 어떤 침구도 네 피부 같지는 않으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오호통재라, 자식이 귀(貴)하나 손에서 놓을 때도 있고, 비복(婢僕)이 순(順)하나 명(命)을 거스를 때 있나니, 너의 미묘한 재질(才質)이 나의 피로에 수응(酬應)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에게 지나는지라. 더러 몸이 아플 때면 네 몸 위에서 밥도 먹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네 위에서 글을 써도 수미(首尾)가 상응(相應)하고, 낱맡 낱말 붙여 내매 조화(造化)가 무궁(無窮)하다.
이 생(生)에 백년동거(百年同居)하렸더니, 오호애재라, 침대여. 금년 삼월 초하루 오시(午時)에 혼례를 올리고 무심중간(無心中間)에 생각하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침대여여, 너를 떠나 살아야 하는구나.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魂魄)이 산란 (散亂)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을 깨쳐내는 듯, 이윽도록 기색혼절(氣塞昏絶)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쓰다듬어 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비좁은 신혼집에 네 몸 뉘일 곳 못 찾았네. 한 팔을 베어낸 듯, 한 다리를 베어낸 듯, 아깝다 침대여, 머리맡을 만져보니 새 침대가 놓여 있네.
오호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한 성품과 푹신한 그 평온(平穩)을 나의 힘으로 어찌 바라리요. 절묘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가 삭막하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생사(一時生死)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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