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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 엔진은 왜 날개 밑에 있을까

사진 한운희


승객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정답은 '시끄러우니까'에 제일 가깝습니다. 여객기는 문자 그대로 손님을 실어나르는 비행기입니다. 제트 여객기가 이륙할 때 나오는 소음은 120dB(데시벨) 수준. 120dB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리입니다. 엔진이 주(主) 날개 밑에 있으면 날개가 이 소리를 어느 정도 막아줍니다. 엔진이 날개 위에 있으면 이 소리를 다 들어야겠죠. 또 날개 위에 있는 엔진은 승객이 바깥을 볼 때 시야도 가릴 겁니다.


잠깐 퀴즈. 그럼 ①엔진 바로 앞자리 ②바로 뒷자리 중에서 어디가 더 조용할까요? 정답은 ①입니다. '도플러 효과'에 따라 자기에게서 멀어지는 소리는 작고 낮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기체역학 관점에서는 비행기에서 날개 윗부분이 가장 민감해서 엔진을 날개 위에 달면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비행기가 날 때는 날개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생기는 압력 차이 때문에 날개 위쪽에 위로 끌어올리는 힘, 즉 양력(揚力)이 작용하게 됩니다.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건 이 힘 덕입니다. 엔진이 비행기 날개 위에 있으면 당연히 공기 흐름에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비행 효율도 떨어지게 됩니다.


날개는 또 자기 무게를 견디느라 자연스레 아래로 휜 모양입니다. 과일 나무가 가지 아래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엔진 역시 아래 방향일 때 무게중심을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게 당연한 일. 보잉(B)747-400 등에 쓰는 프라트& 휘트니 PW4000 엔진은 8850파운드(약 4t) 정도 나갑니다. B747-400은 엔진 4개를 쓰니까 엔진 무게만 16t입니다. 이렇게 무거운 걸 굳이 날개 위에 올려둘 필요는 없습니다.


 

수리가 필요할 때도 엔진이 날개 아래쪽에 있는 게 유리합니다. 땅에서 곧바로 엔진에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엔진이 날개 위에 있으면 날개를 밟고 가야 할 겁니다. 수리하다 도구를 떨어뜨렸을 때도 그냥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날개 위에 떨어지는 건 충격이 다를 터. 또 만에 하나 엔진이 날개에서 떨어질 일이 있을 때도 아래 있으면 그냥 땅으로 떨어지지만 위에 있으면 날개를 부술 위험이 있습니다. 맥도널 더글라스에서 만든 DC-10이나 MD-11은 꼬리날개 아래 엔진이 있었는데 수리가 불편해 사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연료 공급을 생각해도 엔진이 아래쪽에 있는 게 낫습니다. 비행기에서 가장 큰 연료 탱크는 날개 속에 들어 있습니다. 엔진이 날개 아래 있으면 펌프 도움을 최소화한 상태에서도 중력에 따라 엔진에 기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위에 나온 여러 이유와 같은 이유로 비행기 주유구도 날개 아래쪽에 있습니다. (맨 위 사진이 기름을 넣고 있는 장면입니다.)


엔진이 날개 아래에 자리 잡은 건 첫 번째 4발(엔진 4개) 제트 여객기였던 B707부터 시작한 전통입니다. 1958년 첫 비행에 성공한 이 비행기는 1979년까지 1010대나 세상에 나오면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엔진도 날개 아래 있는 거로 굳어졌죠.

 

그렇다고 돌연변이(?)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1971년 VFW-포커 사(社)에서 내놓은 VFW 614는 엔진이 날개 위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사진 참조). 총 40명을 태울 수 있는 이 비행기는 19대 생산에 그치면서 1977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2003년 첫선을 보인 HA-420 혼다제트 역시 엔진이 날개 위에 있는데 이건 날개 아래 있는 엔진을 옮겨온 게 아니라 동체 뒤쪽에 있는 비즈니스 제트기 엔진을 날개 위로 옮겨 온 형태에 가깝습니다.  


그럼 여객기 엔진이 전투기처럼 아예 동체 내부에 있는 건 어떨까요? 이번에는 항공사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내부 공간을 줄여야 하고 그러면 좌석 숫자(=수익)를 줄여야 하니까요. 대신 위에서 언급한 비즈니스 제트기나 DC-9, B727 같은 모델은 날개 대신 동체에 (따로 떨어진) 엔진을 붙이기도 합니다.


엔진이 동체 바깥에 있는 건 제트 엔진이나 여기서 발전한 터보팬 엔진작동하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트 엔진은 제일 먼저 엔진 앞쪽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흡기)부터 시작합니다. 엔진 속에서는 공기를 (압축)한 다음 불을 붙입니다(연소). 그러면 고온고압인 공기는 터빈을 빠른 속도로 돌린 다음 엔진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됩니다(배기). 터보팬은 엔진 앞에 선풍기 같은 날개(fan)를 달아 직접 공기를 빨아들이도록 만들어 효율을 높였다는 게 제트 엔진하고 제일 차이가 나는 점입니다. 당연히 엔진이 기체 내부에 있는 것보다 밖에 있는 게 공기를 빨아들이는 데 유리할 거고 말입니다.



첫 번째 제트 여객기였던 드하빌랜드 DH-106 코멧은 엔진이 날개에 들어가 있는 형태였습니다(사진 참조). 당연히 시끄러웠겠죠? 그래서 소음 문제는 방음재로 엔진을 감싸는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 또 이런 형태는 날개 자체를 유선형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날개 밑에 따로 엔진이 달린 것보다 (저)항력도 적었습니다.


그런데 왜 결국 엔진이 날개 바깥으로 나오게 됐을까요? 일단 엔진 내부에서 어떤 이유로든 파편이 생겼을 때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엔진을 장갑으로 감쌌는데 그러면 무게가 더 나가게 마련. 당연히 날개 구조 자체도 더 복잡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런 형태 대신 날개 아래 엔진을 매다는 '꼬투리 엔진(podded engine)'이 대세가 됐습니다. 원래 꼬투리(pod)는 콩 등이 들어있는 껍질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물론 앞으로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또 다른 대세가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제트 엔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프로펠러 비행기가 당연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보잉사는 2010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동체 위에 엔진을 붙인 콘셉트 디자인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 비행기는 2025년 첫 비행이 가능한 콘셉트라는 데 정말 8년이 지나면 저런 비행기가 세상에 나올지도 모릅니다.


아, 하나 더. 여객기 엔진이 여러 개면 어떤 것부터 시동을 걸까요? 정답은 오른쪽부터입니다. 엔진이 4개라면 오른쪽 바깥에 있는 엔진부터 시동을 겁니다. 왼쪽으로 승객이 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레이크도 이 엔진과 연결해 두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는 법. 왼쪽부터 거는 기종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에어버스 A330은 항공사에 따라 맨 왼쪽 엔진을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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