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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는 언제부터 우리를 화나게 했을까?

지난해 개봉한 영화 '군함도'에서 욱일기를 반으로 자르는 장면


• 뉴스1은 이틀 전(6월 29일) "'정신 못차린' 아디다스, 日 욱일기 역상되는 티셔츠 1년 넘게 버젓이 판매'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통신사에서 아디다스가 정신 못 차렸다고 평가한 건 "아디다스는 4년 전에도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브라질 월드컵 일본팀 유니폼을 제작해 홍역을 치른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현재 네이버에서 이 기사에 감정을 표현한 독자는 총 269명. 이 가운데 92.6%(249명)가 '화나요'를 선택했습니다. 2018년 현재 욱일기는 확실히 한국 사람을 아주 화나게 만드는 아이템입니다.



 • 그런데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통합검색(KINDS) 서비스에서 찾아 보면 1992년 이전에는 '욱일기(旭日旗)'라는 낱말이 들어간 기사가 아예 없습니다.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는 이보다 1년 앞선 1991년 처음 등장합니다. (참고로 '일장기'는 1946년부터 나옵니다.)


그 뒤로 관련 기사가 계속 나온 것도 아닙니다. 욱일기와 욱일승천기 모두 1996년이 되어서야 이 낱말이 들어간 두 번째 기사가 등장합니다. 그 뒤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가 들어간 기사는 총 5255개. 이 중 97.8%(5141개)가 2009년 이후 세상에 나왔습니다. 우리가 욱일(승천)기에 흥분하기 시작한 건 어쩌면 생각보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맞습니다. 신문 기사가 우리 언어 사용을 100% 그대로 반영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감자탕이나 닭도리탕 때도 쓴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쓰는 낱말은 기사에 남기 마련입니다. 세월이 흘러 올해 기사를 찾아 보면 분명 '미투(#metoo)'가 등장할 테니까요. 



• 이 깃발을 욱일(승천)기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국제법상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전범기(戰犯旗)'라고 할 수 있을 터. 이 낱말 역시 2001년이 되어서야 기사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2013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을 따름입니다. '대동아기(大東亞旗)'라는 표현은 여태까지 겨우 7번 기사에 등장했을 뿐입니다. (기타 다른 낱말을 알려주시면 찾아 보겠습니다.)



• 유명인 가운데 욱일기로 처음 논란 중심에 선 건 '노브레인'이었습니다. 이 4인조 록 밴드는 '2001 후지(富士) 록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 아래 영상처럼 무대 위에서 욱일기를 찢어 버렸습니다.



이때는 '잘했다'와 '그래도 너무 했다'로 반응이 나뉘습니. 사실 지금 누군가 이런 일을 벌인대도 똑같은 평가가 뒤따를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록 싫어도 그걸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으니까요. 



• 그래서 잘못한 사람을 찾기로 했습니다. 욱일기는 누군가가 '잘 몰랐다'며 사과하게 만들기도 하는 아이템. 네이버에서 '욱일기 사과'로 찾아 보면 2004년 배우 이승연 씨가 불타는 욱일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건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이 사건은 욱일기도 욱일기지만 위안부를 테마로 누드 사진첩을 찍었다는 게 더 문제였습니다. 


검색어를 '욱일승천기 사과'로 찾아 보니 이 깃발 디자인 때문에 처음 사과한 건 2005년 KBS '무한지대 큐' 제작팀이었습니다. 이 방송은 당시 일본풍 미용실을 소개했는데 미용사 유니폼 어깨에 욱일기 디자인이 들어가 있었고, 이를 그대로 방송했다는 이유로 시청자 게시판에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누리꾼은 '일본인들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요즘 욱일승천기를 보여줘야 하는가'(femin2000), '공영방송 KBS가 이런 장면을 내보내도 되는가'(ziyi0805)라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 종합건대 '욱일(승천)기가 우리는 화나게 한 건 21세기 이후부터'라고 결론을 내려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겁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1991년 나온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에 이 문양이 들어간 스테이지(사진)가 있다고, 이 격투 게임 제작사 캡콤이 '정신 나갔다'며 비판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물론 욱일기에 화를 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잘못이라거나 그러니 이제 그만 화를 내자는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 그냥 '알아보니 그렇더라'하는 이야기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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