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허리노린재는 살아 남기 위해 개미를 닮은 채로 진화했다. 역시 이 지구에서 왕이라 불리는 인간을 모방한 생물은 아직 없다. - EBS 자연다큐 '개미' 시리즈
• 처음 평소보다 '개미가 참 재미있는 동물이로군'하고 생각한 건 예비군 훈련 때였다. 점심시간은 무려 두 시간, 얼굴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훈련장에서 보내기엔 퍽 긴 시간이다.
그때 내 발 밑에서 개미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 꼭 '전쟁' 같은 장면이 벌어졌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알게 됐지만, 개미는 같은 종(種)이라도 서로 다른 개미집(colony) 소속 끼리 만나면 전쟁을 벌인다. 의사소통 수단은 페로몬.
전세가 기울면 승기를 잡은 무리는 상대 수개미, 공주개미를 죽여 '씨를 말린다.' 상대 개미집에서 여왕개미를 꺼내 참수하는 것으로 전쟁은 끝난다. 무서운 놈들이다.
• 더러 종이 다른데도 개미끼리 어울려 아주 평화롭게 지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 때는 '노예제'가 정착한 상태다. 아래 그림에서 가시개미는 일본왕개미 노예다.
노예가 없으면 굶어죽는 개미도 있다. 노예가 없을 때는 열심히 일하다가 노예가 생기면 게으름을 피우는 종류도 있다. 나야 원래 개미보다 베짱이에 가까운 녀석이기는 했지만,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주던 교훈은 무너졌다.
• 그렇다고 이솝우화가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다. 개미는 농사도 짓는다. 정말이다. 중남미 열대 우림에 사는 잎꾼개미는 나뭇잎을 물어다 버섯을 키운다. 지구에서 최초로 농사를 지은 동물은 인간이 아니라 개미다. 그것도 5000만 년 전에 말이다. 식물은 집과 음식을 주고, 개미는 다른 초식 동물이 접근 못하게 '보초'를 서는 형태도 많다.
•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학창시절 생물 공부깨나 했다면 '개미와 진딧물'은 자동으로 '공생'이다. 실제 이들 관계는 개미가 진딧물을 기르는 형태에 가깝다. 진딧물은 개미가 키우는 '가축'이다.
• 개미가 각자 일을 나눠한다는 건 유명하다. 그런데 혹시 개미가 효율성도 높이면서 파산도 하지 않도록 개미집 규모를 조절한다는 건 아셨는지? 정말이다. 그러니까 다른 개미집과 연합도 맺고, 개미집이 너무 커지면 독립도 시킨다는 것.
출처: www.biobiba.co.kr
또 노동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수개미와 여왕개미 양산에도 힘을 쓴다. 개미가 개별 개체마다 생식을 포기하고 여왕개미에 다걸기(올인)하는 건 자기 자식에게는 유전자를 50%밖에 못 주지만, 여왕개미가 낳는 자매는 유전자 75%가 같기 때문이라고. (물론 일개미가 모두 알을 낳는 개미도 있다.)
•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류학자들이 인간 사회의 특징이라고 열거하는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윤리적 요소들이 사실은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는 확실히 그렇다고 느꼈다.
또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데뷔작 '개미'에 "만약 외계인들이 우리 행성에 찾아온다면 겉모습에 속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 개미와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고 썼다. 이 말에도 100% 동의한다.
개미 한 마리는 너무 약하지만 개미는 정말 강하다.
• 자랑은 아니지만, 이 다큐멘터를 보고 나서 '이걸 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게 생겼다.'
물론 퍽 '오덕후스럽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개미 기르기는 분명 내가 어릴 때도 '추천 과학 학습법' 같은 데 포함돼 있었다. 게다가 저 젤(gel) 처음 만든 곳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