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 이제는 잊었고, K 누나 본인은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K 누나가 한 새내기에게 '너는 꼭 연애부터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지나칠 정도로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는데, 역지사지를 하려면 연애 경험이 꼭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 당연한 얘기지만 연애라는 건 둘이 하는 것이지만 그 사람이 속한 세계와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생긴 뒤로 둘 사이는 끊어진 지 오래인데도, 내 눈에 한때 커플이었던 이들 글이 나란히 겹칠 때가 있다는 것. 더러 한 명은 이제야 행복한데, 한 명은 여전히 그 시간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역시 이별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 연인 사이에 주고 받는 말은 (지금은)을 숨기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지금은) 사랑하고, (지금은) 너 없으면 못 살고, (지금은) 네가 곧 행복이다. (지금은)이 사라지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헤어진 연인에게 특별히 모질게 구는 것과 계속해 친절한 사이로 남는 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혹은 '너는 나 못 알아봤냐'는 문자 한 통. 어찌겠어? 지금은 괄호없이도 네가 그립지 않은 걸.
• 영화 '건축학개론'이 유행할 때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쩌면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내게는 첫사랑이 (지금은) 전혀 특별하지가 않다. 그러니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슬픈 건 '구 남친 놀이'가 옛날만큼 재미가 없다는 것. 물론 구 남친 놀이를 하느라 여태 마지를 찾지 못한 건 아닐 테지만… 말하자면 나는 그가 잘 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못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한 때 내 세계에 속했지만, 어쩌면 내 우주 전부였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한 철 장난감 같은 추억.
• 20대 중반 어느 날 여자친구하고 헤어지고 그 전까지 만났던 모든 이들에게 연락해 '우리는 도대체 왜 헤어졌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구 남친 놀이를 하려면 이렇게 제대로!) 모두가 똑같은 답을 내놓아 조금 놀랐었다. (물론 내가 유도한 측면도 있었다.) 그 뒤로도 이별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니 못된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확실히 연애만큼 역지사지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 없는 건 틀림없는 일이었다. 그 답은 '너는 싸움을 무조건 피하려고만 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 없었던 거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