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꼭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 언도를 받은 날"이라는 글이 올라옵니다. 심지어 재작년에 경기도교육청에서 주요 일간지에 이 내용으로 광고(사진)를 싣기도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런 주장이 참 폭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저 사실을 강조하는 이들 역시 그날이 (일본 기업에서 시작한) 밸런타인데이라는 사실이 불편하겠지만 말입니다.
일단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한테 초콜릿을 선물한다는 현재 문화는 일본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시선이 우세합니다. 우리한테는 밀크 캐러멜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모리나가(森永) 제과에서 1950년대 마케팅을 펼쳐 성공한 데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두 가지가 있을 겁니다. 상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과 일본 기업이라는 것.
자,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왜 빨간 옷을 입을까요? 정답은 1931년 코카콜라에서 광고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결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가 필수인 이유는? 드비어스 광고 때문이죠. 원래 어떤 문화가 유행하는 데는 입소문(口傳) 효과가 크고 현대에는 가장 교환 가치가 큰 게 돈이기 때문에 광고에 영향을 받는 것. 이런 것들도 그저 상술이라며 포기하시렵니까? 그냥 좀 즐기면 크게 탈이 날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쭙죠. 김재규 국가정보원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쏜 날은 언제인가요? 근현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1979년 10월 26일이라고 쉽게 답하실 터. 그럼 그가 사형 언도를 받은 날은 언제입니까? 아니 이걸 따로 기억해야 할 어떤 이유 같은 게 있나요? (정답은 같은 해 12월 18일입니다.)
같은 논리로 만약 하나만 기억해야 한다면 어떤 날일까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총리를 쏜 날? 아니면 사형 언도를 받은 날? 안 의사가 이토 총리를 쏜 날은 1909년 10월 26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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