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버거에는 당연히 치즈가 들어가고, 치킨버거에는 닭고기가, 피시버거에는 생선살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햄버거에는 햄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이건 햄버거가 '햄(ham)+버거'가 아니라 독일 도시 '함부르크(Hamburg)'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도시 사람들이 햄버거(에 들어가는 패티)를 처음 만들었을까요? 일단 고기를 구운 건 함부르크 사람들이 맞습니다.
함부르크 출신 상인들이 헝가리에 갔을 때 신기한 음식을 접하게 됩니다. 헝가리는 유목민족이던 훈족(Huns)이 자기 민족 뿌리라고 생각하는 나라. 이 훈족은 다진 고기에 양념을 버무려 육회처럼 먹었습니다.
함부르크 사람들은 이 요리법을 도입하되 고기를 살짝 익혀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음식에 '타르타르 스테이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타르타르는 유럽에서 몽골을 일컫던 표현입니다.
이런 이름을 붙인 건 헝가리에서 먹던 그 육회가 원래 몽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13세기 징키츠칸 시대 몽골 병사들이 유럽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음식 문화까지 전파했던 것. 그러니까 햄버거 '진짜 원조'는 몽골인 셈입니다.
이 내용은 '통 세계사' 시리즈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김상훈 작가가 최근 펴낸 책 'B급 세계사: 알고 나면 꼭 써먹고 싶어지는 역사 잡학 사전'에서 발췌·요약·정리한 겁니다. B급 세계사는 이렇게 '몰라도 괜찮지만 알고 보면 아주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통해 '지적 대화를 주도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김 작가는 이 책 서문을 통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21세기 정치·경제를 두루 꿰뚫고 컴퓨터처럼 술술 역사 지식을 읊는 건 역사 전문가의 몫이다. 다시 말해서 그런 일들을 'A급'의 역할"이라면서 "재미와 교양의 원천이자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역사를 활용하려면 B급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우리가 즐겨 먹는 돈가스가 왜 생겨났는지, 당시 세계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는지, 그 세계사의 흐름에서 돈가스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는 것이 더 생생한 역사 공부일 수 있다. 당당히 '나는 B급 역사 박사'라고 내세워도 좋다"고 밝혔습니다.
그럼 내친 김에 돈가스가 왜 생겨났는지 알아볼까요? 저자는 그 이유를 일본인의 '체격 콤플렉스'에서 찾습니다. 이번에는 책에서 직접 인용하면:
1868년 메이지 정부가 출범했다. 메이지 정부는 서양 열강을 따라잡기 위한 개혁에 돌입했다. 이를 메이지 유신이라 한다. 학교와 공장을 세웠다. 서양식 군대를 양성했다. 리트머스 용지처럼 서양 문화를 쭉쭉 빨아들였다. 일본은 열강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제도만 개혁한다고 해서 서양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서양인과 비교하면 일본인의 체격은 왜소했다. 정치인들은 일본이 진정한 열강이 되려면 서양인과 비슷한 수준까지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서양 사람들은 뭘 먹기에 저렇게 덩치가 좋은 것일까……? 메이저 정부는 서양 음식을 면밀히 검토하고 곧 나름의 답을 찾았다. "오호라! 서양 사람들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같은 육류를 많이 먹는구나."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 메이지 왕은 즉각 "앞으로 소고기과 돼지곡기를 먹도록 하라!"라는 조서를 내렸다. 없어서 못 먹지, 주기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게 고기다. 그러니 '왕의 조서를 모두 환영했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본 국민은 이 조서를 반기지 않았다. 의외로 많은 국민이 이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왜 그랬을까? 사실 일본 국민은 그 전까지 소고기를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육류 자체를 별로 즐기지 않았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왜 일본 국민은 그 전까지 육류 자체를 별로 즐기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그 이유는 7세기에 재위(673~686)한 덴무(天武) 제40대 덴노(天皇) 때문입니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덴무 덴노가 살생을 금했기에 일본 사회에는 육류 기피 문화가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누군가 먹어야 할 음식이 남을 때는? 네, 군대를 동원하면 됩니다. 그래서 병사들부터 쇠고기를 먹였는데 막상 먹어 보니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제대 후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쇠고기 예찬론을 펴면서 일본 밥상에도 본격적으로 고기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처럼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에서 고기 위주로 한끼 식사를 마치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요?) 그런 이유로 일은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역시 B급 세계사에서 인용하면:
그렇다면 서양과 일본의 식습관을 절묘하게 섞어 쌀밥과 고기를 같이 먹게 하자. 이런 생각에 따라 서양 요리를 바탕으로 한 일본만의 독특한 음식이 여럿 탄생했다. 대표적인 이미 말한 대로 돈가스, 쇠고기 전골(kini註 - 스키야키), 카레라이스, 고로케였다.
이런 일본의 제국주의적 속성 때문에 탄생한 먹거리(?)는 하나 더 있습니다. 두통약이라면 '게X린'이 떠오르듯이 설사약 가운데 제일 유명한 '정로환'이 주인공입니다.
(러일) 전쟁이 터지기 전, 만주에 있던 일본 병사들이 설사에 시달렸다. 당시 위생도 엉망이었고 영양 상태도 좋지 않았다. 설사병을 이기지 못하고 픽픽 죽어나간 병사들이 많았다. 일본은 약을 개발해 병사들에게 먹였다. 일본 병사들은 러일 전쟁 중에도 단체로 이 약을 먹었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득의양양했다. 이 약에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으림이 정로환(征露丸)이었다. 우리말로 풀면 '러시아를 정벌한 약'이다. 러시아로서는 자존심이 팍팍 상할 일이다. 나중에 일본은 정벌을 뜻하는 '征'을 바르다는 뜻의 '正'으로 바꾸었다. 그렇다면 '러시아를 바르게 하는 약'이라는 뜻이 되나?
이 책에는 이밖에도 '선글라스는 대체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정답은 판관 포청천?), '루이 14세는 왜 태양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을까'(정답은 발레 공연에 태양신 아폴로로 출연했기 때문에), '환타는 한때 나치를 상징하는 음료였다'(반만 맞다)처럼 다양한 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합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쓸 때는 사전적 의미만 줄줄 늘어 놓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저도 지난해 '잡학사전' 시리즈를 연재했던 놈입니다.) 특히 역사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템 유래와 당시 상황을 꿰뚫고, 현재에 미치는 영향까지 두루 짚어야 읽는 맛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이미 이미 저서가 25만 부 이상 나간 김 작가의 내공이 빛이 납니다. 김 작가는 "재미라는 입구를 찾아 들어온 독자들이 저마다 다른 의미를 찾고 책을 덮을 수 있도록 일부러 칼럼 스타일로 글을 썼다"고 전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을 꼭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부제에 '잡학 사전'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는 것처럼 관심 있는 주제부터 읽어도 책을 즐기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역사 이야기로 주변을 즐겁게 만들고 싶으신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예스24를 통해 B급 세계사 30페이지를 먼저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행복한작업실, 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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