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의 등장 이후 너무 식상한 코드가 돼 버린 '엽기'. 하지만 <앞장서라! 크로마티 고교!>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보다 적절한 낱말은 없다. 다분히 코믹한 상황을 놀랄 만큼 어이없이 진지한 톤으로 다급히 이야기하는 캐릭터 하나하나의 모습은 정말이지 이 낱말 이외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오프닝부터가 그렇다. 티비를 너무 가까이에서 보지 말라는 교훈(?)으로 시작해, 만화 내용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진지한 가사가 이어진다. 테마송의 분위기 역시 발랄함과다는 확실히 거리가 느껴진다.
스토리 라인은 더더욱 황당하다. 먼저 주인공격인 카미야마. 그는 기존의 학원폭력물(?)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서 스토리 전체를 '설명'한다. 한마디로 애니 속에서의 호칭 그대로 '카미야마군'의 이미지가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는 캐릭터.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버틴다. 그것도 진지함을 무기로 말이다. 애초에는 굳은 의지가 있다면 환경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설정이었지만, 중학 시절 저지른 단 한번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 역시 크로마티에 정말 잘 어울리는 녀석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위 그림에서 아웃 포커싱된 녀석들의 생김새는 이러하다.
그러니까 이들의 수행 여행 비행기를 강탈하려던 납치범들이 오히려 쫄 정도의 생김새. 그러니 정상적인 이미지와 달리 카미야마가 점점 '엽기스러워 지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소풍가는 버스 안에서 혼자 고깔 모자를 쓰고선 눈을 감고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주는 에프소드는 단연 카미야마의 변화된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있어 최고의 장면이었다.
그래서 카미야마는 결국 어떻게 될까? 주먹 한번 쓰지 않고, 이 바보 아니 깡패들을 거느리는 우두머리로 성장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그려진다. 달리 말해, 이 만화를 보고 있으면 당신도 자연스레 바보가 된다는 얘기다.
그럼 나머지 캐릭터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위 그림에서도 얼핏 힌트가 나오기는 하지만 한번 알아보자.
하야시다 신지로. 팔랑거리는 모히칸 스타일의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인 녀석이다. 그런데 저 보라색 머리가 사실 알고 보면 가발이다.
누구를 닮았지? 맞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다. 그래서 그의 캐릭터명 역시 프레디. 학교에 커다란 말을 타고 다닌다. 프레디는 정말 고등학생일까? 아니, 일본인이기는 한 것일까?
다케노우치. 1학년 짱이다. 험악한 인상에 거칠 것이 없어 보이는 이 녀석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멀미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정말 안스럽기 그지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사람이었다. 사람이라 부르기 힘든 캐릭터들을 보면 ;
뭐 말이 필요 있을까? 그런데 이 고릴라 녀석 생각보다 똑똑하다. 단점이라면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하잖아 ㅡㅡ;)
그리고 단연 크로마티 최고의 캐릭터 메카자와. 머리에 기름칠을 하는 기계지만, 그 누구도 이 녀석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 게다가 무려 '기계치'이기도 하다. 메카자와를 이야기할 때는 귀여운 동생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녀석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니 '엽기'라는 낱말이 절로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곳곳에 숨겨진 패러디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 있어 결정적인 장치다. 말하자면 미처 준비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여기저기서 웃음 폭탄이 마구 터진다.
한편, 애니메이션의 전체적인 흐름 역시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만화책을 훑듯 정적이고, 단순한 장면이 반복되는 것이 특징. 생동감을 찾으려해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화면처리다. 하지만 그 방식이 오히려 이 애니메이션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그러니까 몰입도라고 해야할까? 말하자면 진지함과 거리가 무척이나 먼 그들의 대화에 정말 진지하게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지점에 이르러서 이 애니메이션은 '엽기'와 동시에 '허무'를 드러내게 된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러다. 어때? 웃기지? 웃기지? 애니메이션은 끊임없이 시청자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다른 질문은 없다. 계속 한결 같다. 그런데도 별 수 없이, 응, 정말, 진짜. 이런 대답밖에 할 수가 없게 만든다.
대학 동기 가운데 친한 녀석들끼리 만든 클랜의 이름은 '수염부', 물론 <멋지다! 마사루>의 그 수염부다.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사루>의 코드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이 애니메이션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