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성신여대 앞에 자주 가던 바(Bar)가 있었다.
정확한 상호는 잊었지만, 아마도 <피아노 바>이거나 <피아노가 있는 바>이거나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전혀 다른 상호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피아노의 존재니까.
사실 <체르니 40번>까지 배운 처지에서 피아노가 낯설다고 말하는 건 강습비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피아노 학원 문을 나선 11살 때부터 그때까지 나는 피아노라는 것을 쳐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피아노를 치기 위해 그 가게에 들렸던 것은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고작 피아노 한 번 쳐보겠다고 수원에서 가기에 성신여대는 확실히 너무 먼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나는 그 가게에 단골이 됐고, 곧잘 마감을 한 다음에도 사장님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동이 틀 때까지 술을 마시곤 했다.
그 날도 마찬가지로 모든 전원을 내리고 촛불을 켜놓은 채 선배와 나 그리고 사장님, 그렇게 셋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비가 내렸고, 덕분에 공기가 눅눅했다. 그리고 선배와 사장님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어쩐지 내가 훼방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물론 사장님은 이미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두고 있었으니 내가 쓸데 없이 예민하게 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됐든 둘은 '부킹'을 통해 만난 사이었으니까.
그때 갑자기 사장님이 피아노 앞에 안자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 노래를 알았고, 선배는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기적이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미묘했던 분위기가 확실히 사라진 것만큼은 틀림이 없었다.
몇 곡인가 노래가 계속 이어졌고, 우리는 더러 노래를 따라하기도 하고, 감상만 하기도 하면서 술 병을 모두 비웠다. 그리고는 옆 가게로 옮겨 한잔 더. 다시 빗소리는 촉촉해졌고, 막걸리는 시원했다. 그리고 스피커에서는 거짓말처럼 다시 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결국 집이 같은 방향인 선배와 사장님을 한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는 첫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선배는 내게 그 가게에 가자는 말을 다시 하지 않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