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1년에 한 두 번씩 꼭 아픈 다리는 그때도 아팠고, 그 핑계로 그냥 집에서 쉬었다. 물론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팠던 건 사실이니까 핑계라고 할 수 없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무엇인가 기념일이라는 것에 굉장히 질린 상태였고, 어차피 똑같은 술자리를 굳이 반복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다. 어쨌거나 강의를 쉰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행복한 상태였으니까 휴일을 말 그대로 휴일처럼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냥 오빠랑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요."
"글쎄 나도 Z랑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어떨지 궁금한 걸."
사실 어릴 적에는 크리스마스가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였다. 산타클로스가 준다는 선물을 받고, 무엇인가 좀 맛있는 것을 먹고, <나 홀로 집에>를 보는 크리스마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크리스마스가 조금 복잡해 진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유명이와 정은이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처음 만난 날이어서 한동안 크리스마스는 이 커플을 비롯해 고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날이었다. 여자 친구를 버려둔 채 이들과 어울린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다 둘이 결혼을 하고, 다들 무엇인가 '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양상이 조금 바뀌게 됐다. 그리고 나 역시 크리스마스는 여자친구와 보내는 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모양이다. 달리 말해,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이라는 것을 세워에 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몇 년 씩 반복되다 보니 확실히 '피곤'이라는 낱말이 떠오른 것도 사실이다. 무엇인가 '기분'을 내야 하고, 그러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굳이 그날이라고 무엇이 달라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진짜 평온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데서 생긴다고 믿는 나는 이런 나들이 점점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생일도 마찬가지고, 발렌타인데이를 비롯한 각종 기념일에 시큰둥해진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머리는 나빠져만 가고, 가슴은 식고, 배만 나오는" 과정이 아닐까? 그러니까 무엇인가 '치열한 감흥'이라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더라.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말이야. 사실 지난 몇 년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과 보낸 적이 없는 것 같아. 무엇인가 평화와 축복을 기대하는 날이라면 역시나 그런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과 있어야 하는데, 그냥 시간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놀았다고 해야 하나?"
올해 Z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하게 된다면, 예전에 Y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방식을 한번 재현해 보고 싶다. 물론 그것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가장 익숙한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생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던 사람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방식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8월에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는 일, 꽤 오랜만의 일인 듯. 지금보다 가슴이 더 뜨겁던 그 시절은 확실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