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assignment Scribble/.OLD

달빛은 못 이겨

access_time 2008.08.23 21:31

벌써 네 번째다. 내가 보기엔 다만 서춘화를 닮았을 뿐인데 끝까지 이수영을 닮았다 우겼던 뚱뚱하고 못생긴 간호학과 학생이 첫번째였고, 두번째는 만성변비에 늘 손발이 차가운 미용학과 학생이었고, 세번째는 매주 일요일에 교회를 가는 독실한 크리스천에 어린 왕자를 무척 좋아하는 사회과학부 학생이었고, 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33-25-36의 몸매를 가진 스무살짜리 백수다.

그녀의 몸매 사이즈를 어떻게 알게 됐느냐 하면, 솔직히 꼬치꼬치 캐물어서 알게 됐다. B컵의 가슴, 날씬하다고 우기는 허리, 나중에 애 잘 낳을 만큼 펑퍼짐하다는 엉덩이, 하지만 백수가 되고 나서 허리가 굵어졌다며 한탄하는 그녀를 꼬치꼬치 졸라 그녀에게 저 수치들을 들어 내고야 말았다. 물론 한번에 저 사이즈를 쭉 읊어준 건 아니고 한번에 하나씩 차근차근 세 번에 걸쳐 듣게 됐는데, 늘 벗어 보면 자기 허리가 날씬하다고 우겼던 것에 비해 수치가 높아서 좀 실망한 게 사실이지만, 원래는 더 가늘었다 강력하게 우기고 있음으로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어차피 그녀도 날 보고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이라 말하는 어처구니 없는 여자임으로 나의 그녀에 대한 파악이 좀 잘못됐다 해서 조금도 이상할 건 없다.

어떤 사람에 대해 파악을 하는 일은 좀처럼 쉬운 게 아니다. 비교적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 굳게 믿는 나지만, 고등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 놈 둘이 사실은 처음 꺼려했던 녀석들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도, 나의 사람 보는 눈이란 그다지 정확한 것이 못되며, 오해와 착각 속에 편견을 들이밀고 사람을 이리저리 재보려는 원초적인 심리는 어느 인간에 대해 올바로 파악하기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된다. 아니, 그뿐만 아니더라도 남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딜레마다. 요즘 들어 이따금 남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라는 문제를 넘어서 과연 남이란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에 관한 궁금증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내가 유아기적인 독선에 잠겨 여전히 지독한 이기주의자인 것처럼 보일는지도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애써 남과의 소통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 지독한 여자를 그 여자보다 더 지독하게 잊지 못할 만큼 남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아 저 사람도 분명 존재하고 있구나,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은 어느 날부터 나의 모든 관계에 기본적으로 나의 자폐증적 기질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난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는 두뇌 속의 전기신호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 아니라 파닥파닥 뛰고 있는 싱싱한 그들의 심장을 느끼고 싶어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사망의 기준은 심장 박동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너의 심장을 한입 베어물면 슈팅스타 맛이 날까. 늘 똑같은 방제로 방을 만들어 그녀를 초대하긴 했지만, 사실 그녀와 나의 몇 안 되는 공통점중 하나는 베스킨라빈스에서 쿠키앤크림 이외의 메뉴는 거의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나기만 하면 당연히 그래야한다는 듯 31 간판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지만, 아마 한번도 슈팅스타를 먹어보지는 않은 것 같다. 방제좀바꿔, 맨날 저 방제냐. 남들이 엽기적이래. 툭하면 엽기야. 이제 엽기도 식상해, 아니 엽기도 식상해라는 말도 식상해. 어쩔 수 없이 너의 가슴살 스테이크는 체리샴푸 맛이 나, 하는 방제로 바꾸고 대단찮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럼 내일 보자,하는 흔해 빠진 말을 마치고 다섯시가 넘어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벌써 오후 두 시가 넘어 있었고, 대충 준비를 하고 대학로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여섯시가 다 되어 있었다. 대학로까지의 거리가 그만큼 멀기 때문은 아니고, 게으름으로 인해 일어나서 한참만에 이를 닦고, 컴퓨터를 켜고 뒹굴거리다 또 담배 한대를 피워물고, 담배를 피웠으니 다시 이빨을 닦고, 뭐 그러다 보니 쓸데 없이 긴 시간을 낭비해 버렸고, 또 이렇게 쓸데없는 문장을 가져다 붙이고 있는 것이다. 76x-5xx3을 눌러 그녀를 불러냈고, 또 베스킨 라빈스 앞의 환기구에 걸터 앉아 담배를 피웠다. 담배 좀 그만펴. 맨날 담배냐. 넌 숨 안 쉬고 살 수 있냐. 그녀는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성큼 걸어 노래방으로 향한다. 이 구두 무거워 죽겠어. 내 것도 그래. 역시 마틴은 신을만한 게 못 돼. 어차피 개나 소나 다 신는 건데 뭐.

앙주의 노래를 들려줬기 때문인지 그녀는 노래방에 가서 마치 자기가 앙주라도 된다는 듯 애교버전으로 불러줄게, 하며 애즈원의 소녀의 꿈을 불렀다. 나도 약속대로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불러줬고, 모처럼만에 그린데의 basketcase를 불렀다. 나보다 훨씬 많은 노래들을 눌러 놓고 마이크를 놓지 않는 그녀를 남겨 두고 밖으로 걸어 나와 담배 한대를 더 피운다. 언제나 그렇듯 어딜 저렇게 가고 있는 걸까, 하는 사람들이 길을 걸었고, 후끈한 바람이 불어와 티셔츠 앞자락을 손으로 잡아 뗐다. 반쯤은 어둑해진 하늘 위로 하얀 보름달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처럼만에 보는 보름달, 하긴 한달에 겨우 하루밖에 없는 보름달.

그녀가 계단을 올라 오며, 왜 안 들어와? 이제 들어가려구 그랬어. 벌써 시간 다 끝났어 인간아. 그럼 이제 어디 가지? 그냥 저기 앉아서 얘기나 하자. 너 늦게 들어가두 돼? 어차피 대학로에만 있으면 집까지 3분이라구. 그녀가 내 손을 뚜벅 잡아 끌더니 조용한 곡목길로 데리고 가 입에 뽀뽀를 한다. 좋아? 응. 자 키스해줘.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들고 있는 그녀. 난 계속 손만 잡은 채 물끄러미 하늘의 보름달만 바라본다.

Under a lover's sky
연인의 하늘 아래
Gonna be with you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거에요
And no one's gonna be around
주위에 아무도 없는 그런 곳에
If you think that you won't fall
당신이 사랑에 빠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면
Well just wait until, 'till the sun goes down
다만 해가 질 때까지만 기다려 보세요
Underneath the starlight starlight
별빛 바로 아래선
There's a magical feeling so right
마법같은 기운이 감돌죠
It will steal your heart tonight
오늘밤 그 마법이 당신의 마음을 훔칠 거에요

You can try to resist
당신은 끝까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Try to hide from my kiss
내 키스를 외면한 채 말이죠
But you know, but you know
하지만 벌써 알고 있잖아요
That you, can't fight the moonlight
당신도 결국 달빛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리라는 걸 말이에요
Deep in the dark you'll surrender your heart
깊은 어둠 속에서 마음을 빼앗기고 말 거에요
But you know, but you know
하지만 알고 있잖아요
That you, can't fight the moonlight,
달빛의 유혹을 견뎌내기는 힘들다는 것
No-o you can't fight it
달빛의 유혹을 이겨낼 순 없어요
It's gonna get to your heart
달빛의 당신의 마음을 훔쳐갈 테니까

There's no escaping love
사랑을 피할 순 없어요
Once a gentle breeze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Sweeps it's spell upon your heart
당신 마음에 주문이 걸리면
And no matter what you think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든간에
It won't be to long 'Till you're in my arms
내 팔에 다시 안기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에요
Underneath the starlight starlight
별빛 바로 아래에는
We'll be lost in the rythm so right
정말 리듬에 푹 빠지게 될 거에요
It will steal your heart tonight
그 리듬이 당신의 마음을 훔칠 거에요

You can try to resist
당신은 저항도 해보고
Try to hide from my kiss
내 입맞춤을 피하려 할지도 모르지만
But you know, but you know
하지만 벌써 알고 있잖아요
That you, can't fight the moonlight
달빛의 유혹을 견뎌낼 수는 없다는 걸
Deep in the dark you'll surrender your heart
어둠 속에서 당신은 마음을 놓아 버릴 거에요
But you know, but you know
그렇지만 이미 알잖아요
That you, can't fight the moonlight,
달빛과 맞서 싸울 수는 없다는 걸
No-o you can't fight it
달빛을 물리칠 수는 없다는 걸
No-o matter what you do
당신이 무엇을 하던간에
The night is gonna get to you.
오늘 밤 당신을 가져갈 거에요.

Your gonna know
당신은 알아야 해요
That I know
이미 내가 알고 있을 것을 말이에요
Don't try you're never gonna win
애쓰지 마세요, 절대 이길 수 없으니까
Underneath the starlight starlight
별빛 바로 아래선
There's a magical feeling so right
신비로운 감정에 휩싸이죠
It will steal your heart tonight
오늘 그 마법이 당신 마음을 사로잡을 거에요

You can try to resist
아무리 반항하고
Try to hide from my kiss
내 입맞춤을 피애 숨는다 해도
But you know, but you know
아직도 모르고 있나요
That you, can't fight the moonlight
달빛은 이길 수 없어요
Deep in the dark you'll surrender your heart
어둠 속 깊은 곳에 마음을 뺏기고
But you know, but you know
정말로 모르시나요
That you, can't fight the moonlight,
달빛은 이길 수 없어요
No-o you can't fight it
달빛의 유혹을 물리칠 순 없어요

몸이 움찔움찔 떨리는 게 드디어 때가 된 모양이다. 엄청난 양의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처럼 서서히 식도에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수만마리의 모기가 달려들어 모든 혈관 속의 피라도 빨아 먹는 듯 한순간 격렬한 가려움증이 찾아왔다. 온 몸에 털이 하나씩 돋아 나기 시작했고, 난 결국 달빛의 유혹에 취해 그녀에게 키스했다. 목덜미를 따라 천천히 내려가던 입술은 날카로운 이빨을 토해낸 채 그녀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B형 피를 받아 먹고 있다. 여전히 아무 것도 눈치채고 있지 못한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조금씩 피를 넘겨주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때는 늦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이미 그녀의 심장을 도려내어 두 손에 뚝뚝 피가 떨어지는 그대로 좌심실부터 한입 크게 베어물 것이다. 그리곤 그녀의 동공 앞에 그녀의 심장을 빼어 들고 왼쪽 눈알부터 피를 한방울씩 떨어뜨려 줄 것이다. 이제야 조금씩 기운이 난다.

거칠게 심장을 뜯어 낸다. 대동맥이 끊어져 굵은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나가는 행인하나 없는 으슥한 골목길, 내일 아침이면 잔인하게 살해된 네 번째 여자 어쩌고 하는 기사가 신문 사회면에 실릴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보 같은 자율신경은 본체에서 뜯겨 나오고도 멈출줄을 모른다. 심장을 꾹 눌러 피를 받아 먹는다. 싱싱한 동맥혈, 깊은 맛이 우러나는 정맥혈, 이제 판막의 위치를 확인하며 좌심실을 크게 깨문다. 입속에서 파닥 뛰는 심장의 느낌.

그래, 너의 심장에선 슈팅스타 맛이 나.

댓글, 0

account_circle
vpn_key
web

security

mode_edit
Scribble/.OLD | 카테고리 다른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