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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에 묻다: 교정성폭행을 아시나요?

오늘은 '화이트데이'입니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죠.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몇몇 여성한테는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받게 되는 날일지 모릅니다.


200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자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유디 시멀레인(사진)이 이 나라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 외곽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윤간(輪姦)을 당한 흔적이 역력했고 온 몸이 칼에 25번이나 찔린 상태였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이 여자 축구 스타가 이렇게 잔혹하게 살해당해야 했을까요?

레즈비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남아공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게 더욱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시멀레인처럼 성폭행을 당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거든요. 레즈비언의 성 정체성을 바로 잡겠다는 남자들이 교정 성폭행(Corrective Rape)을 저지르고 다니는 거죠. 인권 단체에서는 남아공 수도 케이프타운에서만 교정 성폭행이 1주일에 10번 넘게 자행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범죄가 만연한데도 남아공 사법 당국에서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현재까지 교정 성폭행 의심 사례가 32건 접수됐는데 가해자가 처벌을 받은 건 시멀레인 사건 하나뿐입니다. 남아공 법무부는 "개선 여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이 문제를 즉시 해결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 나라 문화가 교정 성폭행을 용납하고 있다는 방증이죠.

이에 온라인 국제 시민 단체가 나섰습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체인지아바즈 등에서 전 세계적인 교정 성폭행 반대 서명 운동에 돌입했고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 서명을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남아공 사법 당국도 두 손을 들었습니다. 교정 성폭행 반대 운동을 벌여온 이들과 함께 3월 14일(현지시간)에 대책 회의를 열기로 한 거죠.

이날이 중요한 건 다음 날 2009년에 43세 동성애자를 교정 성폭행한 남자가 재판정에 서기 때문입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 나라에서는 교정 성폭행범이 법정에 서는 것조차 드문 일입니다. 타임에 따르면 이 남자는 "너는 네가 남자인 줄 알지. 그러나 네가 여자라는 걸 내가 보여주겠다"며 여성을 덮쳤다고 합니다.

물론 대책 회의 한 번에 이 나라 문화가 변화리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법에 앞서 사회적 인식이 변해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모쪼록 이번 대책회의가 이 비인간적인 범죄가 남아공에서 사라지는 첫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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