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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말고 DHMO부터 금지하라!


사실 과학은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악성 중독 물질을 찾아낸 지 오래입니다. 정부에서 아무 규제도 하지 않아 사람들이 잘 모를 뿐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물질을 '일산화이수소(DHMO)'라고 부르더군요.


DHMO는 산성비 주 성분으로 말기 암 환자의 악성 종양에서 검출되는 물질입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물이 이 물질을 하루에 단 0.1g이라도 장기간에 걸쳐 섭취하면 죽게 됩니다.


정부에서는 공업용 용매로 쓰고 있기 때문에 이 물질을 금지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DHMO는 원자력 발전에도 꼭 필요한 물질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즐겨먹는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DHMO를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시급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최소한 패스트푸드에서는 못 쓰게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생각하셨다면 ‘물’이 문제라고 답하신 겁니다. 수소(H) 두 개, 산소(O) 하나라는 뜻인 DHMO를 화학식으로 쓰면 H₂O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물에 대해 어떤 거짓말을 지어낸 건 아닙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물을 먹는다고 곧바로 죽지는 않지만 인간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니까요.


이 흰소리는 제가 처음 지어낸 건 아니고 'DHMO를 금지하라'는 제목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990년대에는 '장학퀴즈'에도 나왔습니다. 모두 인간이 얼마나 잘 속는 존재인지 알려주려는 목적이었습니다.



DHMO 이야기를 꺼낸 건 게임 때문입니다. 강원 고성군 일반전방소초(GOP)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게임이 또 '공범' 신세가 됐습니다.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새누리당)은 "임 병장이 게임 중독에 빠져 자기만의 세계에 살다 보니 군대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우들과 어울리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황 의원은 게임 폭력성이 청소년 폭력과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여럿 나왔다는 걸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제 귀에는 황 의원 주장 역시 "DHMO를 금지하라"는 말처럼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게임은 정말 이렇게 나쁜 존재일까요? 동영상 공유 소셜네트워크사이트(SNS) '유튜브'에 달린 댓글 하나를 보겠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다른 SNS에서도 '전 세계를 울린 댓글'이라며 널리 퍼진 글입니다.


"내가 4살 때, 아빠가 (콘솔 게임기) 엑스박스(XBox)를 사오셨어. 우리는 정말 온갖 게임을 같이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6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말이야.


그 뒤로 10년 동안 게임기를 건드릴 수가 없었어. 엑스박스를 다시 켜보니까 레이싱 게임 '랠리스포츠챌린지'를 아빠하고 같이 하던 추억이 떠오르더라. 그 게임 안에 유령(ghost)이 아직 살아있더라고. 최고 기록이 유령 드라이버로 남는 방식이었거든. 맞아, 아버지의 유령이 계속 트랙을 돌고 있었던 거야.


난 유령을 이길 수 있게 될 때까지 그 게임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 어느 날 드디어 유령을 추월하게 됐지만…. 결승선 바로 앞에 멈춰 섰지. 그래야 아버지 기록이 사라지지 않으니까. 정말 행복했어."



30대 중반인 저 역시 호숫가로 놀러가 수영하다기 아버지가 던진 낚시 바늘이 코에 걸렸던 추억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재믹스'로 함께 했던 갤러그, 마성전설, 서커스찰리 같은 게임도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을 구성하는 '아이템'입니다. 이제 게임을 거의 하지 않지만 저 게임 목록은 제 기억에 아주 예쁜 느낌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요즘 아이들은 유독 게임에 심하게 중독이 된 걸까요? 전 세계 의사들이 참고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2013년판을 보면 게임은 '행위 중독'이 아닙니다.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게임 중독이라고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은 실제로 게임 중독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질환은 따로 있고 다만 그 질환의 증상으로 게임 중독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北野武)는 "요즘 아이들은 현실에서 진짜 필요한 건 너무 쉽게 얻으니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 가득한 가상의 세계로 도망치는 것 뿐"이라고 진단합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부모님들께 '탐구생활' 과제를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그게 그 게임에서 어떤 구실을 하나요? 게임을 같이 해보고 이를 A4 용지에 정리해 보세요. 그게 그저 게임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단언컨대 그 종이 몇 장이 아이 마음에 영원히 남을 '유령'을 선물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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