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톨게이트를 빠져 나올 무렵 차창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비오지 않아?“
먼저 자리를 잡고 있을 친구 녀석에게 문자 한통을 보냈다.
"비는 오지만 상관없을 것 같아."
근 1년만에 찾은 광주는 어수선했다. 특히 미처 단정을 끝내지 못한 버스 터미널의 분위기는 더더욱 그랬다. 모두들 어디론가 향하는 분주한 발걸음, 그러나 이 분주함과 어수선함의 밑바탕에는 어쩐지 모를 고요가 숨어 있었다. 그렇게 너무도 이질적인 느낌으로 광주가 내게 안겼다.
터미널을 빠져 나와 택시를 타고 기사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숙소는 어디가 좋은지, 어디 가야 소주 한잔 할 수 있을지. 그러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고, 기본요금이 겨우 넘는 삯을 지불하고 아스팔트 바닥을 힘차게 걸었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졌다.
결국 차양 아래서 비를 그으며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테이블이 마련된 자리에는 예쁜 아가씨들이 하나 둘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그 아가씨들을 익히 알기라도 한다는 듯 수근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빗속에서 행사가 시작됐다. 광주 사람들은 더뎠고, 타향 사람들은 조급했다. 사소한 충돌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내 분위기는 평온을 되찾았다. 그렇게 20시 30분까지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그러는 사이 나는 몇몇 광주 사람들과 안면을 텄다.
"아저씨, 서울에서 왔나 봐요? 여기 소주 한잔 들어요."
녹차 원액을 섞인 소주를 받아 들자, 홍어의 역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역함을 결코 피할 수 있는 성질이 못됐다. 오히려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역함이었다. 그리고는 화장실을 핑계로 좌중 사이를 빠져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때 캔맥주를 팔고 있는 매점이 눈에 들어 왔다. 머릿수에 맞춰 맥주를 사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 왔다. 처음엔 사양하던 광주 사람들은 다시 아이스크림으로 답례했고, 나는 별로 관심도 없는 광주 이야기를 그들과 나눴다.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또렷이 기억나지도 않는 그런 이야기들.
행사가 파하고도 그들과의 술자리는 계속됐다. 양동 시장에서 통닭에 맥주로 시작됐던 그 술자리는 해장용 복국으로 마무리 됐다. 호남 사람도 아닌 주제에 스스로 '꼴찌의 삶'을 자처하는 그들의 하소연은 묘하게 동감이 갔다. 어쩌면 당연히 애초부터 공감이 불가능한 성질의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첫차를 타고 올라 오는 내내 계속해서 잠만 잤다. 하지만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이택근의 2루타가 또렷하게 기억이 났고, 광주 구장의 열약한 환경 그리고 한기주의 나약함이 오버랩됐다. 5/18이라는 이유로 응원단상에 오르지 않았던 치어리더들도.
그리고 올해까지 나의 광주 원정 연승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그날 그 친구는 어떻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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