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낱말은 참 달콤하다.
꼬마 때 나는 트럭 운전수가 되고 싶어 했다. 집 앞에 8차선 왕복 도로를 닦으면서 덤프트럭이 늘 바쁘게 돌아다녔다. 트럭 아래 들어가 낮잠을 청하는 운전수가 네 살배기 꼬마 녀석 눈에는 멋져 보인 모양. 지금은 이따금
하드트럭을 컴퓨터에 까는 걸로 그 꿈을 대신한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다들 그렇듯 꿈을 몇 번 바꾸었다. 한 때는 의사가 되고 싶었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희망하기도 했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내 꿈은 딱 하나가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생활기록부(지금은 이렇게 부르는데 그때는 뭐라고 불렀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에 적힌 내 '장래희망'은 늘 신문기자였다.
그리고 지금 '공장'에서 글 찍어내는 걸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88만 원 세대'라는 말이 잘 와 닿지 않는 삶을 살았다. 어찌됐든 가고 싶던 대학에 합격했고, 더러 지금 월급만큼 과외비를 받기도 했다. 잠깐 옆길로 새기도 했지만, 언론사 시험을 딱 한 곳만 봐서 합격한 것도 '기자 지망생'들에게 얘기하면 놀랄 만한 이야기.
시련과 실패라는 낱말을 모른 채 나이브하게 살아도 됐던 고마운 인생이었다. 재수 없게 들려도, 사실은 사실이다. 그런데 '무한동력'을 보면서 이상하게 빠져 들었다.
# 끼인 세대의 꿈
웹툰 작가 주호민이 매력적인 이유는 '자의식의 과잉' 같은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자기 (세대) 이야기이고, 주인공이 작가의 아바타로 전면에 등장하지만, 인물이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한다. 꼭 담담하지 않아도 때로 감정에 복받쳐도 좋다. 마음에 와 닿으니까.
장선재는 우리 시대 평범한 복학생의 전형이다. 내가 곧잘 표현하는 것처럼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선진국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세대". 주인집 아저씨로 대변되는 나이 든 어른들에게 "꿈이 없고 나약하다"고 비판받고 대여섯 살 어린 친구들에게 왠지 모를 '시기심'을 느끼는 끼인 처지. 디지털 세대면서 아날로그에 대한 묘한 로망을 가진 또래.
진기한은 '니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를 늘 고민하는 이 세대의 모습. 물론 선재도 그렇다. 어릴 때부터 공부깨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안정된 삶을 꿈꾸며 수의학과에 들어갔지만 거기까지. 뭐랄까 "그래도 내가 한 때난 잘 나갔어"하면서 "가늘고 길게 사는 것 정도는 충분해 해낼 수 있지"하고 퍽 오래 기댔다고 해야 할까? 기한이는 학교에서 가장 빛이 날 존재였다.
김솔은 '나는 남들과 달라'하고 늘 소리 높여 외치는 포부 또는 착각에 빠진 4차원. 현실은 아버지 사업 빚을 갚는 착실한 네일아트 점원. 주호민이 잘 포착한 또 하나 특징. ‘못 나가는 내 남자친구' vs '잘 나가는 남자의 대시'. 한 사람은 꿈의 크기가 아니라 꿈을 향해 다가간 정도에 따라 평가 받는다. (그런데 솔이 너무 내 타입 +_+)
'88만 원 세대'에 해당하는 이 셋의 어울림 속에 이야기는 잔잔하게 흘러가고 예측 가능한 가능성을 남겨둔 채 끝을 맺는다. 잔잔한 희망과 잔잔한 절망은 어떤 의미에서 같은 의미라고 해야 할까?
만화에서 아쉬운 점은 역시나 선재와 솔의 ㅂㄱㅂㄱ 장면이 없다는 것 -_-);;
# "기자는 먼저 시인이 되어야 한다."
신문기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던 건 이 기사 때문이었다. 이 공장만 시험을 본 것도 그 때문.
사춘기라 그랬겠지만 이 기사를 보고 들었던 첫 느낌은 '기자는 먼저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다시 읽으면 왜 그렇게 가슴이 뛰었는지 헷갈리지만,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라도 품어줄까?
모두가 한 번 씩 해 본 말이지만 나도 한 번 따라한다. "K기자, 당신 최고 기사는 뭡니까?" "The Next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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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사를 쓴 두 양반에 대해
;한 분은 당시 '역량강화팀장'으로 우리 동기 채용 과정 전반을 담당하셨고 다른 분은 알아주는 '빠꼼이' 교육 기자. 결국 한 분이 날 이 공장에서 일하게 만들었고, 다른 분이 날 이 공장 직원스럽게 만들었다는 것. 인연이란 참 ㅡ.-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