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표준어 규정은 "돼지고기 간 것과 양파, 호박, 생강 등을 다져 중국된장(춘장)과 함께 볶은 양념을 국수에 넣어 비벼 먹는 요리"는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라고 써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하지만 자장면은 어릴 때부터 짜장면이 선물했던 달콤한 추억을 되살리지 못합니다. 저한테 짜장면은 짜장면입니다.
언어는 살아서 꿈틀댄다 : 언어의 사회성·역사성
아마 학창시절에 '언어의 사회성'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한 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뜻이죠. 국어 선생님이 조금 관심이 있으셨다면 피터 빅셀이 쓴 '책상은 책상이다' 이야기를 꺼내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언어는 아주 천천히 변합니다. '언어의 역사성'이죠.
두 낱말이 한 자리를 두고 싸워서 한 낱말이 이기기도 하고,
착각으로 잘못 쓴 낱말이 사회성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역사 언어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는 거겠죠.
아니, 사실 언어는 매 순간 순간 '현상'으로서 살아 꿈틀 댑니다. 그게 TV에 '우리말 바로 쓰기' 같은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이유겠죠. "너희는 뜻이 통한다고 말을 아무렇게나 쓰지만 사실 그 표현은 이렇게 써야 맞는 거란다."
그런데 언어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의사소통 아닌가요?
문법 "'너무' 뒤에는 부정문", 언중 "글쎄?"
트위터에서
@darmduck님께서 '너무' 뒤에는 부정적인 표현이 와야 맞는데 잘못 쓰이는 때가 너무 잦다는 글을 남기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론은 이게 맞는데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할 순 없죠."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이미 대다수 언중(言衆)이 '너무'를 '정말' '진짜'하고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면 문법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85twt 님께서 주신 멘션처럼 언론에서도 '너무' 뒤에 긍정문을 쓰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그만큼 '너무' 용법을 모르는 기자들이 많다"고 답했습니다. 이건 기자들이 '무식하다'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너무' 용법이 변했다는 뜻이죠. 이제 언중은 '너무' 뒤에 긍정적인 표현이 와도 그게 잘못됐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너무'가 뒤에 오는 형용사나 관형사를 강조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걸 언중이 이해하고 있다면 그냥 그대로도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사전은 '말의 무덤'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하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건 표준어 규정 설명을 보면 "표준어는 교양의 수준을 넘어 국민이 갖추어야 할 의무 요건(義務要件)"이라고 규정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모두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을 법 또는 규칙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낱말도 저마다 조금씩 이해가 다른 게 인간 본성인데 이를 의무 요건이라고 규정한 건 선뜩 이해하기 힘들다는 뜻이죠.
물론 설명에서 의무요건이라고 규정한 게 무슨 뜻인 줄 이해합니다. 또 언론이라면 되도록 표준어 규정에 맞도록 글을 쓰는 게 옳겠죠. 하지만 사전은 '말의 무덤'이기도 합니다. 문법 역시 그렇죠. 살아 움직이는 언어는 무한정 규칙 안에 가둘 수는 없지 않을까요?
변하고 있는 것과 변한 것
담배를 피는 건 잘못입니다.
담배는 피워야죠. '피다'와 '피우다'는 분명 아직까지는 뜻이 다릅니다. 부정문을 만들면서
'안'과 '않'을 구분 못하는 것도 아직 안 될 일입니다.
'돼'와 '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너무'가 그 신호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전에
'준수하다'를 가지고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사전에는 준수하다는 건 '아주 빼어나다'는 뜻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도 준수하다를 그런 뜻으로 쓰시나요? 아니면 '최고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다'는 뜻으로 쓰시나요?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