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참 섹시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합니다. 아니, 아예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버지 군번'인 바코드가 더 활기 넘쳐 보입니다. QR코드 이야기입니다.
최근 한 달 동안 QR코드를 스캔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1년은 어떠세요? 정확한 통계를 찾지 못했지만 전체 QR코드 스캐닝 횟수는 해가 가면서 늘었을 겁니다. 스마트폰 사용자 숫자가 늘었고 처음 몇 번 찍어 보기는 확실히 신기한 기능이니까요.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QR코드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구글에서 QR코드를 검색하는 숫자는 줄어드는 건 그런 까닭이겠죠.
또 최근 QR코드 마케팅에 성공했다는 말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워낙 모든 기업, 단체에서 당연하게 QR코드를 쓰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위에 쓴 것처럼 QR코드는 처음에만 신기합니다. 그걸 제외하면 사용자가 QR코드를 찍어볼 만한 유인이 부족하죠.
QR코드를 찍는다는 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서 △QR코드 스캐닝이 가능한 어플리케이션(앱)을 실행시킨 다음 △카메라 초점까지 맞춰야 하는 퍽 번거로운 행위입니다. 게다가 사용자들은 어떤 앱이 QR코드 스캐닝 기능을 제공하는지 잘 모릅니다. (QR코드 하면 어떤 앱이 떠오르시나요? 네이버 iOS 앱에 QR코드 스캐닝 기능이 있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QR코드가 예전처럼 다시 한 번씩 찍어보고 싶은 피사체로 거듭날까요? 물론 예전보다 QR코드를 스캐닝하기가 쉬워지는 건 사실일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휴대전화를 꺼내고 카메라 앱을 실행시켜야 한다는 부담은 달라지지 않죠. QR코드가 더 이상 신기한 피사체가 못 되는 상황에서 이를 스캐닝하려는 이들에게 어떤 '당근'을 줄 것이냐 하는 고민은 여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QR코드를 스캔해도 얻는 소득이라는 게 뻔합니다. 업체 홈페이지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으로 연결하는 게 대부분이죠. 역시나 처음에는 신기한 경험이었을지 모르지만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귀차니즘을 이겨낼 소비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QR코드는 사실 디자인도 아쉽습니다. QR코드 디자인은 1차원 바코드를 2차원으로 옮긴 형태가 기본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하얀 네모 안에 규칙에 따라 까만 점을 찍은 것에 지나지 않죠. 이런 디자인을 벗어나려 노력하는 장면도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2차원 바코드라는 기능에 충실하면서 디자인도 조금 더 보기 좋아야 한다는 과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아니, 디자인만 예쁘면 사람들이 QR코드를 마구 찍기 시작할까요? '색다른' 디자인에 혹해 QR코드를 찍는 건 한 두 번이 아닐까요?
조금 달리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가 사는 현실과 증강현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레이어(Layar)는 QR코드 없이도 증강현실을 구현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지난해 이 서비스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많은 인쇄 매체에서 주목했습니다. 지면과 동영상 광고를 연결할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러나 여전히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아직 '증강 현실'이라는 세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오프라인 세상과 온라인(모바일) 세상 사이가 여전히 멀기만 한 거죠. 그러니까 공학적 기술 발전 속도를 인문학적 상상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디지털 앨리스를 만날 수 있는 '래빗홀'은 어디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