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7월 12일자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유림(儒林)이여, 그 소견이 고루하지 아니한가. 한문이 어찌 유일한 진서(眞書)이며, 교육에 절대로 필요한 용구(用具)라 하리오"라며 "집단 이익 때문에 민족 문화 운동에 반대한다면 이는 우리가 논평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 경남 진주에서는 신학교에 교실이 모자랐다. 그래서 학생들이 비어 있던 지역 향교에서 공부했는데 유림들이 이들을 내쫓았던 것이다. 향교에서 '현대교육'을 하는 건 공자의 성령을 불한하게 하는 것, 즉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이유였다. 유림은 세월이 흘러 1937년에도 명나라 신종과 의종 위패를 모신 만동묘(萬東墓)에서 제사를 지내다 총독부에 걸리기도 했다.
물론 누군가 이를 두고 '민족문화말살'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분명 일본말로 물리 화학 수학 지리 역사 외국어를 배웠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래도 궁금하다. 이 나라에는 어찌 (그게 어떤 방향이든)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을 두고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투정하고 훼방하는 족속들이 이렇게 넘치고 또 넘쳤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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