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인이라면 지도에 마음대로 선을 그은 다음 '이 쪽엔 못생긴 적(敵)들이 살고, 반대쪽에는 착한 친구들이 산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 노르웨이 인류학자 소르 헤이위르달
그러나 누군가는 늘 지도에 선을 긋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색깔까지 칠하죠. 어떤 이들은 이런 작업을 지리정보시템(GI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래 지도는 GIS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는 서울시내 지도(행정동 424곳 기준)입니다.
이 지도는 무엇을 나타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서울시내는 '못 생긴 적'과 '착한 친구들'이 따로 따로 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저는 지도 제목을 '강남을 접수하라(Occupy 강남)'라고 붙이겠습니다.
이 지도에서 색깔은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때 투표율을 나타냅니다. 파란색이 짙을수록 지난해 6월 2일 제5회 지방동시선거 때보다 투표율이 높습니다. 빨간색은 반대입니다.
(10·26 선거 때 투표율은 48.6%로 지난해 53.9%보다 5.3%포인트 낮았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각 행정동 투표율에서 5.3%포인트를 빼고 비교했습니다.)
강남 사람들은 6·2 지방 선거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투표소를 더 많이 찾았습니다. 나머지 지역 사람들 반대였죠. 이들은 투표소를 찾아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지도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란색은 나 후보, 주황색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표를 더 많이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첫 번째 지도를 보면 점이 찍혀 있습니다. 이는 제가 '진보화 지수'라고 이름 붙인 지표 결과물입니다.
진보화 지수는 각 행정동 사람들이 진보 진영 후보에게 던진 표가 늘어난 숫자를 나타냅니다.
공식은 이렇습니다. (이름은 각 후보별 득표수)
진보화 지수=((한명숙+노회찬)-(오세훈+지상욱+석종현)-(박원순-나경원)
이를 계산해 동별 평균을 내면 660이 나옵니다. 이번 선거에서 박 시장은 지난해 한 전 총리, 노회찬 전 진보신당가 한 동에서 받은 표보다 평균 660표를 더 받았다는 뜻입니다.
'강남을 접수하라' 지도에 있는 점은 이 진보화 지수가 1000을 넘는 지역을 표시해 둔 겁니다.
무슨 뜻일까요? 예전 같으면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을 이 지역 사람들은 거의 투표소에 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반면 박 시장에게 표를 던지려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투표소로 향한 거죠.
그러면 서울 외곽에 주로 소위 2040 세대가 많이 살기 때문일까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강남에도 2040 세대는 많이 삽니다. 젊은 세대가 적은 곳은 오히려 서울 구(舊) 도심이죠.
(빨간 색이 짙을수록 20~49세 인구 숫자가 많습니다. 점은 위와 동일)
실제로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내 20~49세 인구 중 16.2%가 강남3구에 삽니다. (단순히 자치구 25곳 중 3곳은 12%입니다.) 그러나 강남 2040 세대는 자기들 이익을 대변해 주리라 믿는 한나라당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익이란 뭘까요? 네, 예상하시는 것처럼 집값입니다. 한번 행정동별 아파트 평균 시세를 색깔별(파란색)로 표시한 뒤 점을 찍어 보죠.
그렇습니다. 어느 새부턴가 우리는 서로서로 '못 생긴 적"이 아니면 '착한 친구들'로 나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함께 어울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사람들 발길을 투표소로 돌렸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선거 결과는 2040 세대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변두리의 억울함이 한 데 모인 겁니다. 2040 세대는 그 아이콘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아래 지도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세대별 지역별 투표 성향을 나타낸 겁니다.
파란색은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비율, 노란색은 민주당을 비롯해 다른 정당에 표를 던진 비율입니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2040 세대 힘으로 당선됐다고 얘기하는 게 '뜬구름 분석'으로 보이지 않으십니까? 세대가 올라갈수록 해당 지역에서 다른 정당에 표를 던진 이들이 늘어나는데요?
그러니까 좌파 단체들도 Occupy Wallstreet를 따라하려면 여의도나 서울광장이 아니라 도곡동으로 쳐들어 가야 하는 겁니다. 지금 '그 못 생긴 적들' 아니 '착한 친구들'이 정말 화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