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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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 읽은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생각 노트' 중에서.txt



중학생 시절,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가 이웃에 있었다. 그 학교 아이들은 머리가 좋은 건 물론이고 여자아이들에게 인기도 많고 세련된 교복까지 입고 다녔다. 반면 우리는 멍청한 가난뱅이에 촌스럽기까지 했다. 그 학교 아이들과 야구 시합이라도 하면 운동장에서 마주 선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시합까지 콜드게임 패. 그 사립학교는 야구도 엄청나게 강했다. 무엇 하나 이길 수가 없었다. 철저하게 박살 나서 돌아오기 일쑤였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거짓말은 그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아이가 "의사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면 부모는 "무리야. 너 같은 멍청이는.", "새 글러브를 갖고 싶어"하고 말하면 "안 돼, 우리 집은 가난해서" 그걸로 끝이었다. 멍청이와 가난뱅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해결 됐다.(중략)


항상 듣는 말이 그런 식이다 보니 아이들은 저절로 자기 처지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포기하고 참는 게 당연하다는 걸 배웠다. 굶는 일조차 드물지 않은 형편이었으니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말을 하는 데 무슨 깊은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지독하게 가난했을 뿐이다.


다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렇게라도 자식들에게 참는 것을 가르치는 게 일종의 교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의 차디찬 바람 앞에서 참을성 없는 인간은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중략)


민주주의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되었다. 그 평등은 어디까지나 법 앞에서의 평등을 의미한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같은 법의 지배를 받으며, 같은 인권을 부여받은 것뿐이다. 실제로는 그 평등 역시 상당히 수상쩍은 면이 있지만, 일단 겉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착각한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법 앞에서는 인간은 평등할지언정 인간 그 자체가 평등한 건 아니다. 얼굴도 키도 머리도 100명이 있으면 100명 모두가 다르다. 그리고 세상을 둘러보면 길가의 잡초를 뜯어 먹으면서 굶주림을 견디는 노인 부부가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외국까지 밥을 먹으러 가는 부자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등하지 않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두가 평등하다는 착각에 빠져들면서,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노력하면 어떻게든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에게 "너는 멍청이라서 안 돼"라고 하는 것보다 그쪽이 훨씬 더 잔혹하다.


요즘은 초등학교 한 반이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20~30명의 어린이 집단을 예로 들어보아도 어린이들의 능력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운동회 달리기에서조차 한 명 한 명에게 순위를 매기지 않는 학교들이 많다고 한다. 반 아이들 전원이 달리는 릴레이를 시켜놓고 "모두 협력하여 목표를 달성해요"라거나, "손을 잡고 사이좋게 함께 뛰어요"라고 하면서. (중략)


요즘 교육처럼 "사람은 평등하니까 모두 손을 잡아요"라고 가르치는 것은 앞에서 손잡고 뒤에서 싸우라는 말이나 같다. 반 아이들 전원이 달리는 계주에서 진 것은 모두의 탓이라고 선생님이 아무리 말해봐야 사실 아이들은 누구 때문에 졌는지 다 알고 있다. (중략) 발이 빠른 녀석은 빠르고, 느린 녀석은 느리다. 바보는 바보고 호박은 호박이다.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아이들 눈에도 명백하다. (중략) 그런 특성을 묵과한 채 "모두 손을 잡아요"하고 그저 예쁜 말로만 끝내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의 세계가 일그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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