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 '조선 시대 영어 교재'라는 사진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대기업 대표' 이승환 ㅍㅍㅅㅅ 수령도 이렇게 페이스북에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 이름은 아학편(兒學編)으로 원래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이 천자문 등이 당시 조선 실정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펴낸 한자 교재입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 보면 아래처럼 나옵니다.
그(kini註 - 정약용)는 ≪천자문≫과 더불어 ≪사략 史略≫·≪통감절요 通鑑節要≫를 아동교재로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불가독설(不可讀說)을 주장하였는데, 이들 책이 모두 중국의 책인 것을 보면 내용이나 구성적 결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아동용 교재를 편찬하여 우리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그의 국학정신과 주체사상이 표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정 선생이 아학편을 펴낸 건 한자 교육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영어 등 기타 외국어는 들어있지 않았습니다(오른쪽 사진 참조).
그러다가 1908년 3월에 국문연구소 위원으로 있던 지석영 선생(1855~1935)이 이 아학편에 영어는 물론 중국어, 일어 발음까지 합쳐 '지석영 편집본'을 펴냈습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등장하는 그 종두 지석영 맞습니다.) 이 책 간행에는 '외국어 능력자'였던 전용규(?~?)가 큰 힘을 보탰습니다.
지 선생은 사실 한의사일 뿐만 아니라 한글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05년 당시 대한제국 광무제(조선 고종)에게 신정국문(新訂國文)이라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는 이 상소문에서 한자 대신 국문(한글)을 널리 쓰자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닿소리 중에서 반치음(ㅿ)과 옛이응(ㆁ), 홀소리 중에서는 아래 아(ㆍ)를 없애고, 된소리는 닿소치를 겹쳐 쓰자(ㄲ·ㄸ·ㅃ)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 상소문 덕에 새로 생긴 단체가 바로 아학편을 펴낸 국문연구소였습니다.
당시 아학편에 영어가 들어갔다는 건 당시 그만큼 영어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았다는 방증. 18세기 선교사로 한반도를 찾았던 헨리 아펜젤러(1898~1902)는 일기에 "조선에서는 영어 공부열이 대단히 높다. 영어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 있어도 더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조선 사람에게 왜 영어를 공부하냐고 물으면 예외 없이 '출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또 1920년에는 일본인 교사에게 영어를 배우던 서울 보성고 학생들이 "일본인은 원래 (영어) 발음이 불량해 그 발음을 배워서는 도저히 세상에 나가 활용할 수가 없다. 그러니 한국 선생님으로 바꿔달라"며 등교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변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맨 위 사진은 김재석 시인 시집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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