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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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그린 그래프로만 헬조선 이야기를 해보자.


누구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는 언제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유리한 조건을 누리고 산 건 아니라는 걸 명심해라(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on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5년 세상에 내놓은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이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렇게들 알고 계신 분이 많지만 사실은 두 번째 문장. 진짜 첫 문장은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던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가 2012년 국가별로 x축에는 지니계수(소득 불평도)와 y축에는 세대간 소득 탄력성(경제적 대물림)을 표시하는 그래프를 그린 다음 '위대한 개츠비 곡선(curve)'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아마 이 문장 때문일 터. 


크루거 교수가 그린 원본에는 한국이 빠져 있었는데,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2015년 한국을 포함해 그래프를 다시 그렸습니다. 



놀랍게도(?) 한국은 세대 내 빈부격차도 적고, 소득 대물림 정도도 낮은 나라입니다. 이상하죠? 이렇게 나온 이유를 꼽아 보면 1)이 그래프에서 아들은 평균 1976년생이고, 2)지니계수는 1990~2000년 평균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후 소득 대물림은 확인이 쉽지 않으니(1976년생이 낳은 자녀가 벌써 돈을 벌 확률은 낮으니), 최근 10년(2007~2016년) 지니계수 평균부터 구해보면 28.5가 나옵니다. 


어라? 정확한 숫자는 확인하기 쉽지 않아도 이 그래프에서는 한국 지니계수가 30과 40 사이에 있는데 이보다 숫자가 낮아진 것 = 더 평등해진 것으로 나옵니다. 


예, 야로가 있었습니다. 제가 평균을 계산한 건 '2인 이상 도시 가구 가처분 소득' 지니계수였습니다. 전체 가구 지니계수 평균은 34.4였습니다. 이 역시 이 그래프가 나타내는 숫자하고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가처분 소득으로 했냐고요? 가처분 소득(혹은 처분가능소득)이라는 게 뭘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가처분소득을 "개인의 의사에 따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소득. 한 해의 개인 소득에서 세금을 빼고 그 전해의 이전(移轉) 소득을 합한 것으로, 소비와 구매력의 원천이 된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세금'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득은 '세후(稅後)' 소득인 겁니다. 


자, 이제 두 번째 그래프를 볼 차례입니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이 그래프 설명에 나온 것처럼 소득 상위 20%가 소득 하위 20%보다 몇 배를 더 버는지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시장 소득 그러니까 세전 소득은 2006년 6.7배에서 지난해 9.3배로 40.2% 늘어났습니다. 반면 가처분 소득 차이는 1.3% 증가에 그쳤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한마디로 '복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그래프에서 회색 영역이 바로 정책적으로 소득을 재분배한 정도를 보여줍니다. 보시는 것처럼 해가 갈수록 회색 영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할지 몰라도, 갈수록 소득 재분배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봤자 우리가 일하는 것만큼 월급이 안 오르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요? 세 번째 그래프를 봅시다. 한국은 그저 노동 생산성과 임금이 모두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올라서) 그렇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이러면 분명 월급 좀 늘어나봤자 부동산 있는 사람 못 따라간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계시겠죠? 네 번째 그래프가 그에 대한 제 대답입니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짙은 파랑색)조차 임금 상승률(맨 위 주황색 선 두 줄)을 못 따라 옵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물가상승률(CPI)보다 전국 주택 가격이 늦게 오릅니다. 


이 그래프는 1986년부터 그린 거지만 그래도 분명 집값이 오를 만큼 올라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겠죠? 그래서 마지막 그래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갈수록 (월급 모아서) 집을 사기 쉬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그래프는 2013년이 마지막 자료지만 정말 그 후 4년 동안 집값이 두 배 이상 올랐나요? 두 배가 올라야 우리 부모님 세대가 1986년 느끼던 집값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제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걸 이야기할 차례. 소득과 자산은 분명 다르니까요. 한번 국가별 상속·증여세 비율 한번 구글링 해보시면 왜 개츠비 아버지가 저런 말씀을 남기셨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통계를 가져오기 좋아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고 상속세율이 우리보다 높은 나라는 딱 일본 하나뿐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천국이라고 얘기하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분명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살고 있는 땅을 지옥으로 만들지는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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