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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그리고 추억

고백을 거절할 때는 "미안해"가 아닌 "고마워"라고 하는 것이 매너다.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은 알지만 흔들린 것도 내 의지는 아니었다.

지금 사이가 어떻든 내가 여전히 고마운 것처럼 그들 역시 내게 조금쯤은 고마워해야 한다고 믿는다.

세상에 태어나서 또 내 눈에 밟혀서 너무도 고마운 그녀들 Best 5.


# 우에노 주리

그녀는 놀랄 만큼 평범하다. 이 친구에 대해 이야기해보라면 정말 '응, 뭐 그냥 괜찮아' 하는 한마디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무라카미 류가 그녀를 봤다면 '평범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곳도 있군'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의 데이트도 정말 평범 그 자체였다. 인사동 거리, 청계천에서 DSLR을 목에 걸고 거니는 커플. 주말이면 연인들 Must-See를 찾는 그런 부류 말이다.

그때도 나는 '그 누구에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세상'을 꿈꿨고, 말 그대로 '일상다반사'적인 만남을 깨고 싶은 이유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나 너무도 평범하게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이미 헤어졌다고 생각한 내게 너무도 평범하게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과 선물을 보내, 관계가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한 녀석.

그래서 어쩐지 여자친구를 유학 보낸 다른 많은 남자들처럼 '다른 친구가 생길 때까지는' 이렇게 첫머리에 '너무 고맙다'고 써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오피셜'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주인



지금은 그 감정의 정체가 사랑이 아니라 한낱 '리비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안다.

내게 사춘기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꿈틀대는 단백질와 그렇게 계속 싸워야만 했던 시기였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나는 단지 누군가의 단백질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때 그녀가 다가왔다. 사전 정의 그대로 모범생. 예쁘고 착한데다 공부까지 잘하는 아이.

그때나 지금이나 "난 날라리랑은 살아도 모범생이랑은 못 만나"하는 내게 "나는 작은 물고기고 그대는 큰 그물이에요. 그대의 그물코에 걸려서 편히 쉬고 싶은데 그게 안 되네요" 하는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그물코가 무엇인지 케이블티비에서 '삼국지 선리기연'을 보고나서야 알았다면 거짓말일까?

현재 그녀는 모 출판사 직원이 되어 일주일에 한번씩 광화문 사옥을 드나든다.


# 소피 마르소



유행이 돌고 돌아 요즘엔 커다란 '헤드셋' 스타일도 유행이지만 내가 고교생이던 시절만 해도 헤드셋은 곧 촌스러움이었다.

커널형이 막 등장해 인기를 끌던 그 시절.

하지만 나는 유난히 커다란 헤드셋을 좋아했다. 갑자기 먼 나라로 떠나는 것만 같은 차음(遮音).

무슨 일인지 그녀는 울면서 꽤 먼 길을 걸었고, 나도 난생 처음으로 여자 '뒤꽁무니'를 쫓았다. "김희선보다 예쁘다"고 소문이 났던 옆 여고 부회장.

앨라니스 모리셋의 'Head over feet'이 별 도움은 되지는 못했겠지만, 순간 바로 저 장면을 떠올렸다.

헤드폰을 끼워주기는커녕 결국 단 한 마디도 건네지 못했던 미행길.

다시 그녀를 본 건 반포동 고속터미널. 그녀는 한 항공사에 지원하라는 포스터 속 스튜어디스 모델이 돼 있었다.


# 이은주



그녀와 처음으로 같이 본 영화는 '노팅힐'이었다. 여전히 그녀가 그리울 때면 곧잘 엘비스 코스테요의 'she'를 듣는 건 그런 까닭이다.

우리의 마지막 영화는 '주홍글씨'였다. 김영하의 소설을 이미 읽어 내게는 기억나지 않는 대목만 궁금했던 영화.

하지만 '피'라면 질색이던 그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손을 몇 번이고 꼭 잡았다.

우리가 헤어지고 한 계절이 지날 때 즈음 이은주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나는 그제야  엄지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켠 라이터를 버렸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나는 she를 들을 때마다 이은주가 떠오른다.


# 위노나 라이더



내 첫 번째 '벙개' 상대는 winona라는 ID를 쓰던 동갑내기 여학생이었다. 1년 반 동안 <천리안>에서만 알던 그녀는 갑자기 일산에서 전화를 걸어 '캐나다로 유학을 가게 됐으니 꼭 만나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같으면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느냐'고 따졌겠지만 그 시절에는 허술한 개인정보 관리 같은 건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목소리가 다소 허스키했다는 걸 제외하면 이제는 그 친구에 대한 어떤 이미지도 사실 남아 있지 않다. 그 친구를 만났을 때 살았던 세월만큼 더 살았으니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김재경 씨, 여전히 저는 kini로 살고 있는데 그 쪽도 여전히 winona인가요?

꼭 그래서인 것은 아니지만, 위노나 라이더를 꼭 닮은 여자를 29년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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