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내 녀석이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 2는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었다"고 말하는 건 명백한 거짓말이다. "워리우겐"이라는 틀린 발음을 들어도 그게 류나 켄 이야기라는 것쯤 쉽게 알아챌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PC방이 스타크래프트와 동의어였던 것처럼 그때 오락실은 스트리트 파이터 2와 동의어였다.
오락실에서 이 게임만 하면 상대에게 늘 졌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고 상대는 주로 중고생이 많았다고 해도 진 건 진 거였다. 사실 한 살 어린 동생한테도 제법 졌으니 핑계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10대를 시작하기도 전에 대전 격투 게임계에서 발을 뺐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른이 넘은 요즘 가장 열심인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 4'다. 아이폰에서 처음 시작해 이제는 컴퓨터로 옮겨 갔다.
다행히 아직은 '콘솔 게임기를 사고 싶다'는 단계는 아니지만 조이스틱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더러 든다. 뭐랄까? 대전 격투 게임은 확실히 게임패드로는 재미가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아이폰 버전은 내가 격투 게임을 싫어하던 이유가 사라져 마음에 들었다. '필살기'를 쓰려면 스틱과 버튼을 재빨리 조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었다. '야비'에 걸리는 것 역시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이폰 버전에는 필살기 버튼(아래 그림 노란 버튼)이 아예 따로 있다.
덕분에 아주 간단한 조작만으로 원하는 기술을 대부분 활용할 수 있다. 자연스레 연타가 가능하고 (상대가 보기에는) 야비 역시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 나 같은 '격투게임 초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하다. (물론 한 후배는 "선배 그건 참 맛이 아니라고요!"하고 지적하긴 했다.)
PC 버전은 옛날 스타일 그대로다. 다만 아이폰에서는 보기 힘든 그래픽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아이폰과 달리 패드에 느껴지는 진동도 분노(!)를 더 한다. 캐릭터도 더 많다. 여전히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보다 실컷 얻어터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아, 이 맛에 이런 게임을 하는군'하고 처음 느낀 것만 같다. (여기까지 쓰고 한 판 하고 왔다.)
"남과 한 판 붙고 싶다"는 본능은 최신 기술이 더 잘 구현해 준다. 아이폰 버전은 블루투스로 PC 버전은 X-Box 온라인에서 상대와 대전하는 게 가능하다. 또 당연히 대전 모드 이외에도 트레이닝이랄지 미션 수행 같은 요소도 갖추고 있다. 그러니까 남을 일방적으로 때리고 싶다면 트레이닝 모드에 가서 가만히 있는 상대를 가만히 패주고 오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