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 10살 안팎이었을 거다. 어느 글에선가 '마지노선'이라는 낱말을 읽고는 '마지막 선'을 잘못 쓴 거라고 넘겨짚었다. 혹시 몰라서 아부지한테 "아빠, 마지노선이 마지막이라는 뜻이지?"하고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당연히 "응, 맞아." 실제로 그런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이 낱말을 쓰는데 별 거부감은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 영어 문제집에서 등장한 'Maginot Line'이라는 낱말이 영한사전에 '마지노선'이라고 나왔을 때 조금 충격이었다. 마지노선이 차라리 모조리 한자로 된 낱말이었다면 충격이 덜 했을지 모를 정도였다. 'sword'를 /스워드/라고 읽던 녀석이 'Maginot'에서 /마지노/를 이끌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이후 세계사를 배웠기 때문에 마지노선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국방장관인 앙드레 마지노에서 따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후에도 여전히 내게 마지노선의 이미지는 '낙동강 전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프랑스가 독일을 맞아 끝까지 버틴 (가상의) 전선이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 실제 마지노선은 프랑스 정부가 10년 동안 공을 들여 완성한 콘크리트 지하 요새다.
그런데 내 머릿속 마지노선은 지그프리트선 같은 이미지였던 것이다. 맞다. 유럽 여행도 못 가 본 촌스러운 티를 여기서 이렇게 내고 있다. 지금 마지노선은 유명한 관광지라고 하니까.
• 언젠가 일기에 "늘 마지막이라고 말해 놓고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한 번 더'라고 사정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묘사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때는 마지막이라는 게 없을 거라고 믿기는 했지만 분명히 찾아온 마지막 앞에 투정을 부렸던 건 사실이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마지막'이야기를 꺼냈다. 책임도 내 몫이다. 그런데도 또 투정이 부리고 싶어진다. 그 마음을 억누르려고 스스로와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자기 합리화라고 해야 할까?
자기 마음만큼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없지만 마음을 좀 풀어주고 싶다. 너무 날이 섰다. 그냥 편하게 편하게 가자고 다짐한다. 그냥 그뿐이다. 여기가 마지막이니까. 여기가 한계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