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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을 읽읍시다 #75 이갑성 부고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 숨졌다는 소식이 신문 1면에 등장하면 당연히 유명한 사람일 터. 1981년 3월 26일자에 부고가 실린 인물은 민족대표 33인 중 최후의 생존자였고 그 덕에 광복회 초대 회장 자리까지 차지한 인물이었다. 바로 연당 이갑성 선생. 이 선생은 해방 후에도 국회의원부터 (임시) 국무총리를 지내기도 했다.

이 선생은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일제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처럼 창씨개명을 했던 것. 이와모토 쇼이치(岩本昭一)가 그의 또 다른 이름. 그는 망명차 떠난 상해에서 이 이름으로 '일만(日滿)산업공사 전무취제역'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이 자리는 일본인들도 감히 접근하기 힘든 요직 중의 요직이라고 한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그가 일제의 밀정이었다는 증언도 부지기수다.

어떻게 민족대표였던 인물이 어떻게 이렇게 몰락할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그가 해방공간에서 이승만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겨레는 그를 친일파로 몰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러나 이미 학계에서는 그의 친일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지 오래. 물론 창씨개명을 잘 한 일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나쁜 놈으로 만들고 보는 이 '패거리 문화'가 더 문제가 아닐까.

기사 읽기: http://bit.ly/YvWe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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