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관리가 엉망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렇다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하고 비교한 이 한겨레 기사는 전부 사실에 부합할까.
• 일단 사스는 끝내 국내에서 확진 환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 기사에는 '3명이 앓는 데 그쳤다'고 나오는데 이들은 의심 환자였다.) 사전에 미리 대비한 건 완전히 칭찬하고 또 칭찬할 만한 일. 그런데 당시 사스는 2002년부터 유행했던 상태였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 대다수는 메르스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현 정부가 무능한 건 사실이지만 일단 '예방'을 못했다고 무조건 비난하기는 무리라는 얘기다.
• 그렇다면 그때는 왜 고건 총리 중심으로 범정부 차원의 사스 종합상황실을 출범시켰을까. 그때는 '질병관리본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스 사태'를 치른 뒤 "사스와 에이즈, 홍역 등 전염병 관리를 위한 국가 차원의 질병 방역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국립보건원과 국립검역소를 통합한 기관"이 바로 질병관리본부다. 그러니까 원칙적으로 이 기구가 제 구실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방역 체계에 꾸멍이 뚫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 질병관리본부가 제 구실을 못하는 이유는 그럼 뭘까. '총리 바로 밑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내가 세운 가설이다.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보건복지부 산하 연구기관이다. 고건 총리가 2013년 중앙일보에 쓴 회고에서 박철곤 당시 정부종합상황실 부실장은 "복지부에 예비비를 지원했고 서둘러 이동식 열 감지기 10대를 구입했습니다"하고 말했다. 지금 질병관리본부장이 활용 가능한 예비비는 과연 얼마일까. 그리고 과연 질병관리본부(장)의 영(令)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먹힐까. 지금 메르스는 지역 이기주의에도 시달리고 있다.
• (그리고 이건 정말 욕 먹기 딱 좋은 가설이라는 건 아는데) 질병관리본부가 서울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충북 청주시에 있는 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 안에 있다. 2009년 8월에 옮겼다. 신종인플루엔자(H1N1)가 유행일 때만 해도 이 기관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있었다. 정부가 유능할 때는 물리적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정부가 무능하면 이것도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 출근 해야 하는 130일 중 20일만 출근한 세종시 공무원도 나온 정부 아닌가.
• 물론 이제 와 질병관리본부를 물리적으로 이전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면 정부 조직에서 질병관리본부가 차지하는 위치는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아무리 무능한 정부라고 해도 질병관리본부 최고 책임자가 총리급이었다면 이렇게 계속 삽질만 할 수 있었을까. (어쩐지 그랬을 것 같다는 건 함정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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