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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을 읽읍시다 #116 안타까운 손기정 군 부친 소식


전직 체육 기자로서 부끄러운 고백 하나. 체육 기자들은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 같은 종합 스포츠 대회 때 선수 집안에 우환이 없는지 곧잘 묻는다. 부모님이 병상에 계시거나 아예 최근에 돌아가셨다거나 하면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아버님 영정에 마치는 금메달' 같은 기사가 숱하게 나오는 이유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발행부수가 많은 두 신문사 역사가 10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와서 어떤 기자가 이런 스타일로 처음 기사를 썼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은 일. 그래도 확실한 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생(1912~2002)이 금메달을 땄을 때도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것이다.


손 선생 가슴에서 처음 일장기를 지운 1936년 8월 13일자 동아일보 지면을 잠시 보자.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메이지(明治)신궁 대회에서 마라톤 공인 코스를 뛰어 2시간26분42초라는 세계 최고 기록을 냈다. (중략) 그가 조선에 돌아오던 날 각 단체 연합으로 환영회를 열고 손(기정) 군과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하였던 것이다. 밤이 깊도록 기뻐해야 할 이 밤! 운명의 장난이란 너무도 악착스러웠던 것이다. 바로 그의 부친은 68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승리가 너무도 즐거워서 술을 대취하였었다. 마시고 또 마시고 가슴이 터지려는 환희를 참지 못해 마침내 풍증을 일으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이 얼마나 저주스러운 소식일까? 오늘의 세계적 영웅이 된 아들 손 군을 그의 부친이 알 수만 있다면 그 정경! 그 심회! 오죽할 것인가? 올림픽 최후의 골인을 한 후 군중이 에워싸고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서도 그의 선친의 생각에 눈물지은 손 군을 상상하면 누구라고 그 마음 편할 것인가?"


어쩌면 '잘 팔리는' 적어도 기자들이 그렇게 믿는 기사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일장기 말소사건'이라고 배운 것과 관련이 있는 건 같은 달 25일자 지면이다. 이날 지면 때문에 일장기를 지운 이길용 기자(1899~?), 현진건 당시 사회부장('운수 좋은 날' 그 현진건 선생 맞다) 등이 구속되고 신문이 정간당해 유명하지만 실제로 손 선생 가슴에서 처음 일장기를 지운 건 이날 이 기사였다.


기사 읽기: http://bit.ly/2wowp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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