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정답은 '아주 무겁기 때문'입니다.
3월은 기차와 친해지는 달입니다. 대학 새내기 중에는 고향을 떠나 다른 지방으로 진학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게 제일 큰 이유. 서울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경우에도 지하철 탈 일이 확실히 늘어났을 걸요?
어린 시절 우리가 노래한 것처럼 기차는 길고 빠릅니다. 총 길이 388m인 고속철도(KTX)는 최고 시속 305㎞로 서울~부산 사이를 최소 2시간 9분에 주파합니다. 자동차부터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빨리 달리는 것에는 거의 대부분 안전벨트가 달려 있습니다. 기차만 예외입니다. KTX(사진)를 비롯해 한국에서 운행 중인 그 어떤 열차에도 (일반석 기준으로) 안전벨트는 없습니다.
한국이 안전불감증에 걸린 나라라 그런 건 아닙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철도에 안전벨트를 설치한 곳은 없다"며 "핀란드에서 안전벨트 설치를 검토하고 시범 운영한 적은 있지만 결국 백지화했다"고 전했습니다. 국체철도연맹(UIC)에도 안전벨트 관련 규정은 없습니다. 이 관계자는 "철도 교통 수단에 안전벨트가 있으면 오히려 안전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왜일까요?
안전벨트는 속도가 갑자기 줄어들 때 탑승자가 받게 되는 충격을 줄여주는 게 존재 이유입니다. 기차는 기본적으로 속도가 갑자기 줄어들 일이 없습니다. 시속 300㎞로 달리던 KTX를 급제동시킨다고 해도 1분10초 동안 3300m를 진행한 뒤에야 멈춰섭니다. 이를 가속도(적확하게는 '감속도·減速度')로 바꾸면 1.19㎨가 됩니다. 시속 10㎞로 달리던 차를 2초 만에 정지시키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멈춰 세우기가 힘든 건 맨 처음에 설명드린 것처럼 열차가 아주 무겁기 때문입니다. 코레일에 따르면 KTX는 승객을 한 명도 태우고 있지 않아도 692t(KTX-산천은 403t)이 나갑니다. KTX는 총 363석이니까 승객 한 사람 몸무게를 60㎏이라고 가정하면 여기에 약 22t을 더해야 합니다. KTX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화물도 싣습니다. 결국 KTX가 달릴 때는 700t을 훌쩍 넘기는 일이 많은 겁니다.
학창 시절 배우신 것처럼 가속도는 질량에 반비례합니다. 그러니까 무거울수록 속력을 끌어올리기도 멈추기도 힘이 듭니다. (참고로 KTX가 시속 300㎞에 도달하기까지는 6분 5초, KTX-산천은 5분 16초가 걸립니다.)
또 이 무게 자체가 승객을 지키는 구실을 합니다. 어지간한 충격은 차체가 그냥 흡수해 버리는 거죠. 700t짜리 기차에게 1t짜리 승용차는 몸무게 70kg인 성인에게 100g 무게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종이컵에 물을 가득 채운 게 150g 정도입니다.
게다가 기차 안에 안전벨트가 있으면 안전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보신 것처럼 기차가 사고가 나면 몸이 튕겨나갈 일은 거의 없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대신 자체가 찌그려져 압사하는 상황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는 최대한 빠르게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인 만큼 안전벨트가 없는 게 더 유리합니다. 코레일 관계자는 "영국 철도안전표준위원회 실험 결과 안전벨트 착용 이 승객 대피나 구조를 방해해 사망자가 최대 6배까지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비행기에 안전벨트가 있는 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비행기도 수백t이 나가는 데다 하늘에서 다른 비행기와 충돌할 확률도 사실상 제로(0)에 가깝습니다. 또 하늘에 떠 있기 때문에 어차피 사고가 나면 안전벨트가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행기 안전벨트가 효용이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비행기 사고 4분의 3 정도가 이착륙 과정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기체 무게 자체가 탑승객에게 충격을 주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매는 게 안전합니다. 이착륙 과정에서 안전벨트를 매달라고 특히 강조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는 속도가 확 줄면서 몸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이때도 안전벨트가 도움이 됩니다.
또 비행 중에는 기류에 따라 비행기가 크게 흔들릴 때가 있는데 이때도 안전벨트를 매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승무원이 안전벨트를 매달라고 돌아다니다가 (자기는 안전벨트를 하고 있지 않으니) 다치는 일이 생각보다 빈번합니다.
모 회사에서 사보에 쓰겠다고 부탁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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