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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사우디, 성인 여성 해외여행 자유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민항기 조종사 훈련을 받고 있는 달리아 야샤르 씨. 알자지라 홈페이지 캡처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이 자기 뜻에 따라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2일 아랍 위성 TV 알자지라에 따르면 사우디 왕실은 마흐람(محرم) 제도를 손질하는 내용을 담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84) 칙령을 관보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흔히 '남성 후견인'으로 번역하는 마흐람은 원래 '결혼하거나 섹스를 했을 때 이를 하람(حَرَام)으로 간주할 수 있는 친·인척'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하람은 재미있게도(?) 금기(禁忌)와 정결(淨潔·부정함이 없음)을 동시에 뜻합니다. 그래서 여성이 미혼일 때는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남자 형제 등이 마흐람이며 결혼 후에는 남편 그리고 아들이 마흐람이 됩니다.


지금까지 사우디 여성은 자기 이름으로 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었습니다. 해외여행을 떠나야 할 때는 마르함이 쓰는 여권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리는 방식으로 자기 신분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니 마흐람이 동행 또는 승락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사우디 영토를 벗어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앞으로는 만 21세 이상 사우디 국민은 성별에 관계없이 자기 이름으로 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또 마흐람이 동행하지 않아도 혼자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게 가능합니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주미(駐美) 사우디 대사가 된 리마 빈트 반다르 공주(44)도 트위터를 통해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 마흐람 제도가 영향을 줬던 게 물론 여행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우디 여성은 결혼·이혼, 여행, 사업 계약, 취업, 은행 거리, 병원 치료 등 법적 활동을 할 때 반드시 마르함의 허가를 얻어야 했습니다(네이버 지식백과 '마흐람 제도'). 한마디로 여성을 '법적 미성년자'처럼 취급했던 겁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우디 여성이 삶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내릴 때는 마흐람의 '선의(godwill)'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사우디 여성은 성인이 된 뒤에도 혼자서 법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칙령에는 여성의 법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내용이 다수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사우디 성인 여성은 스스로 혼인 및 이혼 신고를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는 남성만 얻을 수 있던 미성년 자녀 보호자 자격도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자녀 출생 또는 사망 신고도 여성이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단, 사우디 여성은 여전히 자녀의 결혼 또는 이혼을 허락할 권한은 없으며 자기 국적도 물려줄 수 없습니다. 물론 혼자서 외국으로 떠나 정착해 살게 되면 이런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마르함 제도가 싫어서 외국으로 떠나고 싶어도 마흐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우디를 (불법적으로) 떠난 여성이 해마다 최소 1000명은 됐습니다. 올해 1월에도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18)이 가족과 함께 쿠웨이트 여행을 하던 도중 호주로 망명하겠다며 태국 방콕으로 도망쳐 언론 보도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캐나다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알쿠눈은 망명 전 영국 BBC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조국에서 공부도, 일도 할 수 없다. 자유를 얻어 내가 원하는 대로 공부하고, 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캐나다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인천국제공항을 거쳐가기도 했습니다.


사우디 왕실이라고 이런 상황을 수수방관만 하고 있던 건 아닙니다. 사우디는 지난해 1월 여성이 축구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고, 5개월 뒤에는 여성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직접 차를 몰고 있는 사우디 여성 운전자. 동아일보DB 


이에 대해 소위 '국제 사회'에서는 2017년 왕위 계승자로 지명 받은 뒤 실질적으로 사우디를 통치하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5)가 '현대적인 개혁가'라는 이미지를 얻으려고 이런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사우디는 성인 여성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모든 시민은 성별·장애·연령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취업 규칙 개정안도 발표했습니다. 사우디 왕실은 현재 22% 수준인 여성 노동 참여율을 2030년에는 3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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