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을 뛰고 있는 케이드 로벨 군. FOX9 화면 캡처
미국 FOX9 방송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네소타주 세인트클라우드에 사는 헤더 로벨 씨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문자 그대로 식겁(食怯)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날 아홉살 짜리 아들 케이드는 동네에서 열린 5㎞ 달리기 대회에 나갔습니다. 로벨 씨는 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이 대회 코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아들이 지나갈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
"처음에는 그저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라 늦게 뛰나 보다'하고 생각했어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케이브보다 달리기가 훨씬 느린 친구들도 지나가고 나니까 '아무리 컨디션이 나빠도 저 친구들보다는 빨리 뛰었을 텐데…'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고 났더니 '얘가 다쳤나?', 아니면 '길을 잃었나?'하고 걱정이 꼬리를 물더라고요. 결국 더 나쁜 상황까지 상상하게 됐어요.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법이니까요."
어머니 헤더 로벨 씨. FOX9 화면 캡처
로벨 씨는 차를 몰고 코스를 한 바퀴 돌았지만 어디서도 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붙잡고 '혹시 이런 아이를 보지 못했냐'고 물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습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진짜 미친 것처럼 소리를 치고 다녔어요. 소방관을 붙들고 '반드시 내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며 불며 매달리고 했습니다."
그때 멀리서 혼자 울먹이며 결승선을 향해 뛰어 오는 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로벨 씨는 아들이 꼴등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케이드 군 결승선 통과 장면. FOX9 화면 캡처
그런데 아들이 결승선을 통과하자 대회 관계자가 다가와 "10㎞ 1등"이라고 알려줬습니다. 로벨 씨가 "또래 중에서 1등인가요?"하고 묻자 이 관계자는 "아니오. 전체 1등이요"하고 답했습니다. 케이드는 이날 10㎞를 48분17초에 뛰었습니다. 이날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한 40세 여성보다 1분 가까이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날 10㎞ 경주에서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평균 38세였습니다.
아들은 왜 원래 뛰기로 했던 5㎞ 코스 대신 10㎞ 코스를 뛰었을까요? 이날 5㎞ 코스(노란선)는 동네를 한 바퀴 도는 형태였고, 10㎞ 코스(파란선)는 갈림길에서 곧바로 우회전을 하는 대신 먼 거리를 돌아 다시 합류하는 형태였습니다.
"오른쪽으로 꺾으려고 했는데 한 여자 분이 똑바로 계속 뛰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그대로 뛰었죠. 구론대 뛰어도 뛰어도 결승점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오늘은 5㎞가 왜 이렇게 멀까' 궁금해 하면서 뛰다가 10㎞ 반화점에 가서야 엉뚱한 코스를 뛰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로벨 씨에 따르면 케이드는 만 18개월 때 이미 1㎞를 완주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루 씨는 "아니, 사실은 엄마 배 속에서 뛰어 나왔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케이드는 여섯 살 때부터 크로스 컨트리 클럽에 가입했고 현재는 일주일에 세 번씩 한번에 2~6마일(약 3~9㎞) 정도를 뜁니다.
"아들이 보이지 않았을 때는 정말 식겁했지만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됐습니다.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거예요. '너 실수로 10㎞ 우승했던 날 기억나?'하면서 말입니다. 아, 케이드가 다음주에 또 5㎞ 대회에 나가는데 이번에는 제가 갈림길에 서서 '여기서 꺽으라'고 알려줄 생각입니다."
역시 인생에는 때로,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실수 때문에, 엉뚱한 길을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 길에 또 다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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