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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테이프는 어떻게 우리에게 왔다 갔나?…루 오텐스 부고에 부쳐

카세트 테이프에게는 연필이 꼭 필요합니다. 그 반대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요즘 친구들은 카세트 테이프와 연필이 왜 좋은 친구 사이인지 짐작도 못할 겁니다.

 

아니, 카세트 테이프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카세트 테이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이유도 딱히 없습니다.

 

이제 음악을 '오프라인 저장 장치'에 가지고 다닌다는 건 확실히 보기 드문 일이 됐으니 말입니다.

 

음악뿐 아니라 다른 데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2021년은 테이프나 컴팩트 디스크(CD)는커녕 범용직렬버스(USB) 메모리도 보기 힘든 시간입니다.

 

카세트 테이프는 컴퓨터용 저장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CD나 USB가 그랬던 것처럼 한 때는 카세트 테이프를 컴퓨터용 저장 매체로 쓰기고 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에서 가져온 이 사진이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카세트 테이프가 이렇게 인기를 끈 건 무엇보다 싸고 또 복사하기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같은 가수 앨범도 카세트 테이프는 장시간 음반(LP) 절반 정도 가격밖에 하지 않았고 소위 '더블데크'만 있다면 복사도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그 덕에 길거리에는 (불법 복제한) 카세트 테이프를 파는 노점상이 차고 넘쳤습니다.

 

게임을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서 팔던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게임 카트리지(팩)보다 싸고 또 복사하기도 쉬웠으니까요.

 

'카세트 테이프의 아버지'로 평가 받는 루 오텐스

이렇게 위대한 저장 장치를 만든 주인공은 네덜란드 두이젤에서 태어난 루 오텐스(사진)였습니다.

 

제목을 보면 아실 수 있는 것처럼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오텐스는 이 세상 분이 아닙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오텐스는 6일(이하 현지시간) 향년 9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BBC에서 이 소식을 전한 건 아인트호벤 다그블라드 등 네덜란드 언론에서 부고를 전한 다음 날입니다.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제 학창 시절 추억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겁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필립스 첫 휴대용 테이프 플레이어 'EL 3885'

네덜란드 델프트공대를 졸업하고 1952년 필립스에 입사한 오텐스는 1957년 벨기에 하셀트 공장 제품 개발 책임자로 발령을 받습니다.

 

(나라가 다르니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필립스 본사가 있는 아인트호벤과 하셀트는 차로 1시간 15분 정도 거리입니다.)

 

오텐스는 하셀트에서 필립스 첫 휴대용 (릴) 테이프 플레이어 'EL 3885' 개발을 진두지휘합니다.

 

이 제품은 100만 대가 넘게 팔리면서 필립스 '효자 제품'으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그래도 필립스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작은 기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어했던 것.

 

오텐스 역시 '이 세상 짜증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음향 기기가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프리츠 플로이머와 그가 만든 테이프 플레이어

테이프 겉면에 자성(磁性)을 띄는 물질을 발라서 소리를 처음 저장한 건 프리츠 플로이머(1881~1945)였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한 플로이머는 1928년 종이 테이프를 활용해 소리를 담아 놓는 데 성공했습니다.

 

플로이머는 1935년 이 발병품을 개량해 '마그네토폰(Magnetophon)'이라는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첫 번째 제품이 늘 그렇듯 여전히 크고 비싸고 다루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때문에 라디오 방송국이나 전문 스튜디오가 아니면 이 제품을 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릴 테이프 플레이어 울렌삭 T1500

이후 모든 전자 제품이 그런 것처럼 테이프 플레이어도 점점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결국 '휴대용 테이프 플레이어'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현재 관점에서 보면 '이 제품은 휴대도 가능하다'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웠지만 미국에서만 100만 대가 팔릴 만큼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다 1958년 획기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RCA에서 테이프를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아 세상에 내놓은 겁니다.

 

'테이프 카트리지'라고 이름 붙은 이 테이프는 가로 20㎝ × 세로 13㎝로 VHS 비디오 테이프(가로 18.7㎝ × 세로 10.2㎝) 정도 되는 크기였습니다.

 

카세트 테이프(왼쪽)와 테이프 카트리지 크기 비교

오텐스는 이 카트리지를 벤치마킹해 새로운 테이프를 만들기로 합니다.

 

사실 당시 필립스는 오스트리아 빈 지사에도 휴대용 테이프 개발을 지시한 상태였습니다.

 

두 팀을 경쟁시켜서 더 좋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로 한 겁니다.

 

빈 지사에서는 테이프 가운데 구멍이 하나만 있는 제품을 들고 왔고 오텐스 팀은 우리가 아는 카세트 테이프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결국 경쟁에서 승리한 오템스 팀은 이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EL 3300도 만들게 됩니다.

 

사상 첫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EL 3300

필립스는 1963년 오디오 기기 박람회인 '베를린 라디오 쇼'를 통해 이 제품을 세상에 소개합니다.

 

카세트 테이프가 세상에 등장한 걸 가장 반긴 건 '축소 지향' 일본인이었습니다.

 

오텐스는 2013년 인터뷰를 통해 "일본인들이 그렇게 사진을 찍어가더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일본에서 '카피 제품'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필립스와 오텐스는 재미있는 결정을 내립니다. 아예 제품 특허표를 받지 않기로 결정한 겁니다.

 

이 결정에 두 손을 들어 반긴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소니'였습니다.

 

소니에서 만든 첫 번째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오 TC-D5

물론 소니도 처음에는 가정용 또는 카오디오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1978년 TC-D5를 출시하면서 휴대옹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시장 문을 두드립니다.

 

음질에서는 흠잡을 데가 없다는 평가를 듣던 TC-D5였지만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크고 무거웠습니다.

 

이에 이부카 마사루(井深大·1908~1997) 소니 명예회장은 '내가 쓰게 더 작은 제품을 만들어 오라'고 주문하게 됩니다.

 

소니 제품 개발 팀은 휴대용 녹음기 '프레스맨'을 개조해 음악을 재생할 수 있게 만드는 걸로 이 주문에 답합니다.

 

소니에서 만든 휴대용 녹음기 '프레스맨'

프레스맨은 이름 그대로 기자가 취재 내용을 카세트 테이프에 담을 수 있도록 만든 기기였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일부러 계속 '테이프 플레이어'라고 썼지만 '테이프 레코더'가 더 흔히 쓰는 말이니 휴대용 녹음기가 먼저 세상에 나온 게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녹음이 제일 중요한 기능이 되면 일단 스피커를 아주 중요하게 취급할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이부카 회장은 개조 프레스맨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소니 로고를 디자인한 구로키 야스오(黑木靖夫·1932~2007)에게 '이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라'고 지시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온 게 바로 그 유명한 워크맨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카세트 테이프를 유행하게 만든 1세대 워크맨

구로키가 찾은 해법은 스피커 대신 헤드폰(이어폰)을 채택하는 것.

 

스피커가 빠져서 기기가 작아지다 보니 집 밖에서도 언제 어느 때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오텐스가 카세트 테이프를 처음 만들면서 '이 세상 짜증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음향 기기가 드디어 세상에 나온 셈입니다.

 

워크맨이 공전(空前)의 히트를 치면서 카세트 테이프도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오텐스는 생전에 "워크맨을 필립스에서 만들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운 일로 꼽기도 했습니다.

 

반면 구로키는 '미스터 워크맨'이라는 자랑스러운 별명을 얻었습니다.

 

카세트 테이프에 밀려 수명을 다한 '8트랙 테이프'

올해 기준으로 40대 중후반 이상이신 분은 아마 이 사진처럼 생긴 '8 트랙 테이프'를 기억하고 계실 터.

 

원래는 8 트랙 테이프가 시장을 주름잡던 존재였지만 워크맨 등장 이후 카세트 테이프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래도 LP는 카세트 테이프보다 음질이 뛰어나 더 오래 버텼지만 역시나 결국 왕좌를 넘겨줘야 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카세트 테이프 전성기를 끝내는 데도 오텐스가 한 몫 거들었다는 점입니다.

 

"CD가 있으라!"

1970년대 필립스에서 오텐스가 담당한 업무는 바로 광학 디스크 개발이었습니다.

 

이후 필립스는 소니와 광학 디스크를 공동 개발해 1982년 상용화합니다.

 

이 디스크가 나중에 카세트 테이프 시장을 집어 삼키게 되는 CD입니다.

 

1982년 ABBA가 전년도에 내놓은 앨범 '더 비지터스'(The Visitors)를 CD로 발매한 뒤로 CD는 야금야금 음악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91년 이미 미국 시장에서는 CD 매출이 카세트 테이프를 넘어 서게 됩니다.

 

믹스 테이프 안 만들어 보신 분 -_-)/

사실 테이프는 물리적 특성상 번거로운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듣고 싶은 노래를 찾으려면 앞으로 감기와 되감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심지어 컴퓨터로 게임을 할 때도 매번 테이프를 맨 앞으로 감아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원하는 노래까지 버튼 한번으로 찾아가는 기능이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테이프를 감는 시간 자체가 사라졌던 건 아닙니다.

 

그래도 원하는 노래만 골라 담아 나만의 테이프를 만들던 그 추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몇 번 이사를 반복하면서 어디론가 모두 사라진 그 시절 테이프가 참 그리운 날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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