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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선정 100대 명반 리뷰 #1

아마도 이 블로그에 드나드는 사람 가운데서는 Jui밖에 모를 듯하지만,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music 꼭지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그때는 지금처럼 UCC가 많지 않은 세상이라 곡을 올리기도 쉽지 않았고, 충분한 곡을 올릴 만한 계정을 얻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 그 꼭지는 주로 앨범한 관한 리뷰로 채워져 있었다. 물론 '평론'과는 거리가 먼 개인적인 감상. 하지만 확실히 앨범에 대해 쓰는 일은 어떤 흐름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러니까 어떤 노래를 좋아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밑도 끝도 없는 일이지만, 확실히 앨범이라는 건 흥미와 취향 등이 녹아 있는 대상이니 말이다.

그래서 한번 웹진 '가슴'에서 선정한 100대 명반을 가지고 간략한 '감상'을 적어보려고 마음 먹었다. 과연 1위까지 다 마무리 지을지 의문이지만, Delete 버튼이 있으니 안심하고 ㅡ_ㅡ


100- 35(10) 동서남북 [아주 오래된 기억과의 조우] (1988/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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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동서남북>이라는 밴드명을 들으면 박호준과 이태열이 떠오른다고 말하는 게 정상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광민이 이 팀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동서남북>을 들을 일은 없었을 것 같다. 분명 어떤 TV or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김광민이 언급을 했기에 찾아 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첫 느낌은 와우! 이 앨범이 1988년에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하자면 정말 놀랄 만한 충격이었다. 1988년이라면 <소방차>가 각종 가요 프로그램을 석권하고 있을 때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들은 프로그레시브를 연주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대중에 어필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겠지만, 지금 들어도 큰 아쉬움이 없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추천곡은 <나비>.
 

99- 35(13) 이상은 [외롭고 웃긴 가게] (1997/킹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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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웃긴 가게』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좋게 말해서 감수성이 가장 풍부할 때였고 나쁘게 말하면 청승의 극을 달리고 있을 때. 그리고 이 앨범은 친구한테 받은 생일 선물이었다.

천천히 한 곡 한 곡 들으며 생각했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구나. 한 없이 강해지길 꿈꿨던 내게 이상은은 그런 생각을 안겼다. 하지만 그 뒤로도 여전히 아픔 앞에서 솔직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 앨범을 좋아하던 그에게 똑같이 말해주고 싶었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결국 그 말을 해주지 못한 채 우리는 헤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 앨범은 내게 아픔이다.


98- 35(15) 브라운 아이즈(Brown Eyes) [Brown Eyes] (2001/갑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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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처음 산 테이프를 뜯는 행위는 어떤 신성한 의식과도 같았다. 조심스레 비닐을 벗기면 플라스틱과 코팅지 특유의 질감이 손끝에 찾아온다. 조심스레 테이프를 워크맨에 넣으면서 속 커버를 훑어보던 그 시간. 그리고 테이프 특유의 잡음.

내게 『Where The Story Ends』는 그 시절의 설레임을 떠올리게 만든 앨범이었다. 무엇인가 달콤하고 세련된 세계로 편입되고 있다는 느낌. 어떤 의미에서 윤건의 편곡은 양창익이라는 이름으로 <DIVA> 사운드를 만들어 낼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얼의 보컬이 덧씌워지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확실히 세련됐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전체적인 앨범의 느낌이라면? 어쩐지 CD 체인저에 각기 다른 싱글을 넣고 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나쁘지 않은 곡들인 건 사실이지만, 각기 따로 노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건 곡들에 개인적인 추억이 녹아 있지 않은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97- 37(11) W [Where The Story Ends] (2005/플럭서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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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W>를 알게 된 건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2000년 무렵으로 기억하는데 같은 동호회(넷츠고 페이퍼매니아 빼빠동)에서 활동하던 한 녀석이 죽이는 밴드가 나왔다며 내게 <클래지콰이>를 추천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플럭서스'에 가입하게 되고 「Shocking Pink Rose」를 듣게 됐다. 그리고 그들의 두번째 앨범이 바로 『Where The Story Ends』. 어떻게 들으면 너무 똑같고, 또 어떻게 들으면 또 너무 다른 사운드.

그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면 「소년 세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은하 철도의 밤」이라고 해야할까? 아니 그래도 역시 「Shocking Pink Rose」인 것일까? 한 곡을 고르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나왔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96- 37(12) 시나위 [Down And Up] (1987/오아시스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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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80년대에 고교 시절을 보낸 분들께는 건방진 소리겠지만, 9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를 다닌 내게도 <시나위>는 굉장했다. 물론 서태지가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다는 점 역시 충분히 어필하는 점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2집 『Down And Up』에는 '락전' 김종서가 보컬로 참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시나위의 보컬 가운데서 가장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3집에서 짤린 후 4집에서 다시 복귀했으니 신대철 씨의 생각은 나와 다른 듯.

작년인가 재작년에 EBS에 가서 새로운 보컬이 노래하는 <새가 되어 가리>를 들었는데, 확실히 내 취향에는 그 쪽이 더 맞았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왜 김종서가 스스로를 '락의 전설'이라 지칭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 '락발전'이 맞는 게 아닌지…


95- 38(12) 전인권 [전인권] (1988/동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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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의 솔로 앨범 <전인권>에 어떤 노래가 실렸는지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나와 노래방에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와 노래방에 적어도 두 번 이상 같이 갔다면 내가 부르는 「사랑한 후에」라든가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혹은 「돌고, 돌고, 돌고」 같은 노래를 들은 적이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헛사랑」이다. 어떤 이들은 「맴도는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기억하고 있을 그 노래. 어떤 의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인권 스타일'의 노래라고 해야 할까?

피하길 없네, 님의 사랑. 끊을 수 없네, 나의 마음.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말 못하고 헛사랑만 뱅뱅도네. 그러나 이제는 마약을 끊지 못하는 양반으로 기억될 터이니 아쉬울 따름.


93- 38(14) 이소라 [눈썹달] (2004/T-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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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에 실린 「바람의 분다」의 한 소절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 소절보다 이 앨범을 더 잘 설명하는 문장을 적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 역시 다르게 적히는 추억에 아파하고 있을 때 이소라가 찾아왔다.

Y는 곧잘 말했다. 누가 추리 소설의 결말부터 읽느냐고. 뻔한 이야기는 재미없다고. 하지만 나는 곧잘 추리 소설의 결말부터 읽고, <록키>의 뻔함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추억은 어쩌면 처음부터 다르게 적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이렇게 못난 나 혼자 남아 오늘도 먼저 그리워 해. 화를 내도 좋아. 나를 울려도 돼. 나를 비웃어도 좋아. 너의 관심을 다 내게로 돌려줘. 그러나 결국 다르게 적힌 추억.


93- 38(14) 강산에 [나는 사춘기] (1994/킹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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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할 수 있어」를 들으면 중학교 때 여자 수학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이 문장에 조금이라도 애틋한 추억이 깃들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저 이 노래를 부르던 선생님이 지독한 음치였다는 생각이 떠오를 뿐이니까.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한 학년이 9반. 우리반은 성적 도맡아 놓고 꼴찌를 하지만, 체육대회만 하면 학교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울 정도로 '건강한' 반이었다. 덕분에 아직 젊은 여 선생님이 다루기엔 무리가 있었떤던 게 사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당연히 수학과 반성적 9등의 영예를 차지했다. 그것도 8등과 평균 10점 차이. 선생님은 열심히 아이들을 나무랐지만, 건강한 녀석들은 야유를 보내기 바빴다. 결국 울면서 뛰쳐나갔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선생님 "넌 할 수 있어" 이렇게 외치지 않았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흠 ㅡ_ㅡ



91- 39(13) 클래지콰이 프로젝트(Clazziquai Project) [Instant Pig] (2004/플럭서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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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 혼자 몰래 좋아하는 것 같아서 열렬히 추종하다가 너무 인기를 얻게 되자 시들해진 배우, 작가, 가수 등이 있는지? 내게는 클래지콰이가 그렇다. 그저 웹사이트에만 존재할 때의 클래지콰이가 확실히 내게는 더 신선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너무 클래지콰이 스타일의 음악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 역시 다소 옛 느낌을 사라지게 만든 원동력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내게 클래지콰이는 그저 이택근 닮은 알렉스를 떠오르게 만들 뿐, 이라고 말하기엔 여전히 좋아하는 듯.

하지만 클래지콰이의 사운드를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물론 호란의 얼굴을 실제로 확인했을 때의 느낌도. 그런 여자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응? ㅡㅡ;)


91- 39(13) 양희은 [1991] (1991/킹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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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양희은이라면 「아침이슬」이 먼저 떠오르는 쪽과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떠오르는 쪽으로 세대를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처럼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 떠오르는 부류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리고 이 연상은 김민기냐 이병우냐를 떠오르게 만드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두 작곡가 모두 정말 좋은 목소리를 만났다는 점에 있어서는 모두 행운이라고 말해도 좋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

이 앨범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좀더 연륜이 느껴지는 양희은의 목소리에 어떤 감정을 입혀야 하는지 이병우가 너무도 잘 알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 같은 날에 어울리는「가을 아침」을 듣고 있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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