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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씻고 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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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인플루엔자A(H1N1)가 유행하면서 손 씻기를 강조하고 있다. 자칭 타칭 '손가락 페티시 마니아'로서 퍽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말하는 '예쁜 손'은 꼭 손가락이 가늘고 길다는 뜻만은 아니다. 남들이 곧잘 '게으른 손'이라고 부르는 형태가 아니라도 '참 예쁜 손'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사람이 하루 종일 가장 많이 쓰는 신체 부위가 바로 손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란 말처럼 나는 '손은 생활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손을 어떤 상태로 두느냐 하는 것이 그래서 내게는 중요하다. 그게 내가 손, 손, 손을 외치는 유치한 이유다. (그러니까 孫씨 성을 가진 jui양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


목소리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 인간은 곧 자기 언어다. 사람은 결국 자기 말로 평가 받는다. 자기 생각을 어떤 톤으로 표현하고, 말할 때 표정은 어떤지 하는 것들을 두루뭉술하게 '목소리'라는 낱말 하나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확실히 이제는 이은주 같은 손가락이 아니더라도, 박경림 같은 목소리를 가진 여자라도 사랑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니 어서들 여기서 잘 보시고 저 좀 follow하시길 -_-)/



얼마 전에 미국인 교수님과 인터뷰를 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이런 게 다 어릴 때부터 엄마 말 안 들어서 생긴 일이다. 밖에 나갔다 오면 손 씻어라. 밥 먹기 전에 손 씻어라. 화장실 다녀오면 손 씻어라. 엄마는 틈만 나면 손을 씻으라고 말하시지 않았느냐.


이 말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저 문장이 원래 영어로 어땠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


사실 이건 영어 인터뷰를 할 때마다 겪는 고질병이다. '받아치기'를 할 때부터 이미 머릿속에서 번역된 내용을 한글로 친다. 그래서 독자들이 '원문이 보고 싶다'는 e메일을 보내도 대답할 방도가 없다.


인터뷰를 녹음해도 마찬가지다. 해석이 갈릴 만한 낱말은 괄호 속에 따로 적을 때도 있지만 원문 그대로 받아치는 건 역시 무리다. 그런데 인턴으로 온 대학생들을 인터뷰에 데리고 가면 영어 그대로 잘도 받아친다. TED라도 받아치는 연습을 해야 할까?



홍콩에 갔을 때 놀란 게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손을 씻는 모습이었다. 화장실에는 어김없이 '손을 씻고 수도꼭지를 만지지 마시오' 하고 씌어 있었다. (역시나 이 문장이 영어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손을 애써 씻고 나서 세균이 득실거리는 수도꼭지를 만지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주장이다. 저 문장을 본 뒤로 나도 손을 닦고 나서 꼭 냅킨으로 수도꼭지를 감싸서 잠근다. (구글링을 해보니 다른 나라도 비슷한 것 같은데 기억이 없다.)


우리 회사 L모 선배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화장실에서 만난 선배는 내가 소변을 보고 손을 씻자 "너도 고정관념에 젖었구나"하고 말했다. 선배는 계속해서 "중요한 걸 만지기 전에 손을 씻어야 효과가 있지 만진 다음에 씻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손 없이 사는 게 나을까? 그거 없이 사는 게 나을까?"하고 물었다. 선배는 손을 먼저 씻고 난 뒤 소변을 봤다.


물론 아직도 나는 '습관적으로' 소변을 보고 나서 손을 씻는다. 하지만 가끔 선배가 한 저 말이 떠오를 때는 먼저 씻고 소변을 본 뒤 다시 씻을 때도 있다.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다. 생전 설거지도 안 한 내 손에 주부 습진이 생긴 건 혹시 이것 때문일까?



그냥 넘어가기 아쉬워 남기는 똑바로 손 씻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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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The Emotions가 부른 'Boogie wonderland'를 들으며 썼다. 그런 기분이 전달되면 참 좋을 텐데…


아, 생일 축하 노래를 두 번 부르는 동안 손을 씻어야 제대로 씻은 거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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