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村上春樹 - 1Q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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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총이 다 불을 뿜는 건 아니야. 총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야. 여긴 터진 틈과 부정합성과 안타클라이맥스로 가득 찬 현실 세계야.

내가 생각하는 내가 실제 나와 다를 때가 있다. 이 문장은 여러 뜻으로 읽히겠지만, 지금 말하는 건 나는 달라진 지 오래지만 자기 자신은 기억에 갇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할 때다.

대학 다닐 때 나는 중앙도서관 895.635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은 녀석이었다. (어차피  기억은 왜곡되게 마련이다.) 또 새로 책이 나오면 빼놓지 않고 사는 작가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이 책 두 권을 읽으면서 '아, 소설을 읽는 기분은 이런 거였지'하고 참 오랜만에 느꼈다. 확실히 이제 나는 일본 소설은 물론 어떤 소설도 열렬한 팬이 아니다.

내가 book이라는 카테고리를 섣불리 없애지 못하는 건 '독서 근황' 때문이 아니라 '독서 이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아오마메(青豆) 같은 친구가 있다. 여전히 어떤 인력으로 서로를 끌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내 휴대전화에는 P 번호가 저장돼 있지만 요즘에는 전혀 그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으니까.

다만 첫 몽정 주인공. 아직 초등학생이던 나는 섹스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다. (지금도 제대로 섹스하는 법은 사실 알지 못한다. 그건 평생 배워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 느낌이 어떤 건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나는 P와 퍽 따뜻하게 서로 몸을 매만졌다. 곧 삽입해야 할 때가 다가왔지만 어쩔 줄 몰랐다. 그 친구 몸에 촉촉하게 젖어 있어야 할 여성 대신 빳빳하게 선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사정을 하고 말았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자 팬티에 처음 보는 미끌한 액체.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게 몽정이군' 하고 새 팬티를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조기 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아닌 무라카미 류(村上龍)를 떠올렸다. 뭐랄까? 류가 아이디어를 내고 하루키가 쓴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꼭 그런 기분이었다.

또 1권 중반부까지 아오마메 부분이 '공기 번데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2권에서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실망할 정도였다. 확실히 책도 자주 읽어야 '감'을 잃지 않는 모양이다.


하루키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하루키는 역시 소설보다 수필이다.

또 예전에 하루키는 우리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느끼기 힘든 타입이었지만 이번 소설은 어쩐지 '아, 하루키도 이제 늙었구나'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결론은 '호우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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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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