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총이 다 불을 뿜는 건 아니야. 총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야. 여긴 터진 틈과 부정합성과 안타클라이맥스로 가득 찬 현실 세계야.
• 내가 생각하는 내가 실제 나와 다를 때가 있다. 이 문장은 여러 뜻으로 읽히겠지만, 지금 말하는 건 나는 달라진 지 오래지만 자기 자신은 기억에 갇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할 때다.
대학 다닐 때 나는 중앙도서관 895.635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은 녀석이었다. (어차피 기억은 왜곡되게 마련이다.) 또 새로 책이 나오면 빼놓지 않고 사는 작가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이 책 두 권을 읽으면서 '아, 소설을 읽는 기분은 이런 거였지'하고 참 오랜만에 느꼈다. 확실히 이제 나는 일본 소설은 물론 어떤 소설도 열렬한 팬이 아니다.
내가 book이라는 카테고리를 섣불리 없애지 못하는 건 '독서 근황' 때문이 아니라 '독서 이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내게도 아오마메(青豆) 같은 친구가 있다. 여전히 어떤 인력으로 서로를 끌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내 휴대전화에는 P 번호가 저장돼 있지만 요즘에는 전혀 그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으니까.
다만 첫 몽정 주인공. 아직 초등학생이던 나는 섹스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다. (지금도 제대로 섹스하는 법은 사실 알지 못한다. 그건 평생 배워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 느낌이 어떤 건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나는 P와 퍽 따뜻하게 서로 몸을 매만졌다. 곧 삽입해야 할 때가 다가왔지만 어쩔 줄 몰랐다. 그 친구 몸에 촉촉하게 젖어 있어야 할 여성 대신 빳빳하게 선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사정을 하고 말았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자 팬티에 처음 보는 미끌한 액체.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게 몽정이군' 하고 새 팬티를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조기 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아닌 무라카미 류(村上龍)를 떠올렸다. 뭐랄까? 류가 아이디어를 내고 하루키가 쓴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꼭 그런 기분이었다.
또 1권 중반부까지 아오마메 부분이 '공기 번데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2권에서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실망할 정도였다. 확실히 책도 자주 읽어야 '감'을 잃지 않는 모양이다.
• 하루키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하루키는 역시 소설보다 수필이다.
또 예전에 하루키는 우리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느끼기 힘든 타입이었지만 이번 소설은 어쩐지 '아, 하루키도 이제 늙었구나'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 그래서 결론은 '호우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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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