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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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신드롬

오후 수업만 있는 오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마을버스에 올라 환기구 아래 자리를 잡았다.

'피터팬'을 읽고 있는 초등학생 여자애 두 명. '책은 눈으로 읽는 거야.' '난 눈으로만은 절대 못 읽어.' '지금도 속으로 읽고 있어?' '응. 속으로 읽는 게 눈으로 읽는 거야.'

분명 이 꼬마애들의 세계에도 뭔가 고민이 있고, 불만도 있고, 또 나름대로 복잡하기도한 사회겠지. 누구랑은 놀면 안 되고, 그 아이랑 놀았다간 자기도 같이 놀면 안 되는 아이가 되어 버리고, 자기가 어른이 된다는 일이 믿기지 않고, 그저 막연한 동경으로만 머룰러 있는 세계. 회의로 무언갈 결정하기 좋아하는 또래 집단.

아, 나는 식상하게도 그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피터팬 신드롬'이라든가 '유예기간의 연장' 같은 용어조차 몰랐고 알 필요도 없던 시절. 물론 그 시절 나를 괴롭혔던 고민들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리고 그때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강렬히 돌아가고 싶다. 아니, 사실은 지금 이대로 멈춰 있고 싶다.

내 속의 웬디가 말한다. "난 정말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단 말야." 그렇지만 당장 내겐 약간의 두통이 있고, 설사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게 중요하다. 두통약을 먹고, 변기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 kini註 ────────

이 글을 썼던 2004년 12월보다 나는 얼마나 더 어른스러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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