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90년 전 오늘 동아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조선 사람의 생활이 날로 파멸의 함정에서 고통하는 것을 구제코자 하는 방책과 또 우리의 물산을 장려하여 외국 시장에까지 세력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서울에 있는 20여 단체의 유지 30여 인이 9일 오후 6시에 청년회연합회에 모였다." 맞다.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물상장려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동아일보 설립자 인촌 김성수 선생이 이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국사 공부를 열심히 하신 분은 여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운동 구호는 '조선사람 조선으로! 우리 것으로만 살자!'였다. 주요 강령은 △첫째, 의복은 남자는 무명베 두루마기를, 여자는 검정물감을 들인 무명치마를 입는다. △둘째, 우리 손으로 만든 토산품은 우리 것을 이용하여 쓴다. △셋째, 일상용품은 우리 토산품을 상용하되, 부득이한 경우 외국산품을 사용하더라도 경제적 실용품을 써서 가급적 절약을 한다.
동아시아 3국 분업 체제로 먹고 살아야 하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 구조에서 이런 소리를 한다면 고등학생이 들어도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겨우 산업화에 눈을 뜨던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정말 절실한 문제였다. 경제 예속화 우려라는 건 사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살아 꿈틀대는 이론이니 말이다. 그러나 살아 꿈틀대는 경제를 가만히 붙잡아두려 했던 이들의 노력이 실패로 끝이 난 건 당연한 일. 이 운동 내용 중에는 '금주 금연 실천'도 있었다. 쓰디쓴 실패를 맛 본 이들은 무엇으로 쓰린 속을 달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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