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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 성씨는 뭘까?

1917년까지 영국 왕족은 성(姓)이 없었습니다. 가문이나 왕조 이름이 있으니 성을 쓰지 않아도 그 사람이 누군지 다 아니까요. 현재 영국 왕족인 '윈저 가문'은 원래 독일에 뿌리를 둔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20세기 초반에 독일하고 제1차 대전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왕실은 가문 이름이 독일색이라 부담이었습니다. 이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 조지 5세는 버크셔 주 윈저에 있는 성채(城砦)의 이름을 따 가문 이름을 윈저(Windsor)로 바꿨습니다.

그러면서 "빅토리아 여왕 후손들도 성을 윈저로 한다. 단, 기혼이거나 결혼한 적이 있던 여성은 예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하기 전까지 영국 왕족들 성은 윈저였습니다.

195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한 이후에도 영국 왕실은 이 전통을 지켰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엘리자베스 윈저(이후 중간 이름 생략)', 남편인 필립 공은 '필립 마운트배튼'이었습니다. (참고로 필립 공도 그리스 왕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1947년까지는 성이 없었습니다. 그가 속한 가문명 역시 독일 느낌이 나는 '바덴버그'였는데 조지 5세가 뜻을 살려 이를 영어로 번역한 게 '마운트배튼'입니다.)

그러다 1960년 여왕 부부는 둘 사이에서 나온 자손에게는 다른 성을 주고 싶다고 결정을 내립니다. (왕인데 이 정도도 마음대로 못 할까요?)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을 뿌리로 둔 자손들은 '마운트배튼윈저'를 성으로 쓰게 됐습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찰스 왕세자는 자연스레 '찰스 마운트배트윈저'가 이름인 것. 찰스 왕세자 아들인 윌리엄 왕세손도 '윌리엄 마운트배튼윈저'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성이 윈저인 여성이 영국 여왕이 된다면 이 법칙을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키니' 가문과 결혼한 여성이 여왕이 되면 그 자식 성은 '키니윈저'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찰스 왕세자가 건재한데다, 왕위 계승 순서가 장자 우선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길 개연성은 거의 없습니다.

또 왕이 되면 성을 바꿀 수 있습니다. 찰스 왕세자가 "내 후손들은 마운트배튼윈저 대신 윈저만 성으로 쓰자"고 하면 줄줄이 성이 바뀌는 겁니다. 마운트배튼을 써도 되고 다른 이름을 써도 됩니다. 왜냐? 왕이니까요.


+
하나 더

우리는 흔히 찰스 왕세자 전 부인을 '다이애나 왕세자비'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도 'Princess Diana'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적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Princess Charles', 즉 '찰스 왕세자비'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처녀 시절 케이트 미들턴 씨였던 윌리엄 왕세손 아내도 '윌리엄 왕세손비(Princess William)'가 됩니다. '캐서린 왕세손비'가 아니라 말입니다.

영어로는 이런데 우리말로는 좀 더 복잡합니다. 왜냐면 비(妃)는 '왕의 정실 아내'한테만 쓰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찰스 왕세자빈(嬪)', '윌리엄 왕세손빈'이라고 쓰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습니다.


+또 하나 더

14세기부터 영국 왕세자는 '웨일스 공(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of Wales)'이라는 작위를 얻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웨일스 공빈(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Wales)'이 됩니다. 그런데 처녀 시절 커밀라 로즈머리 씨(AKA 전 남편 성을 따 '커밀라 파커 볼스')였던 현재 찰스 왕세자의 아내는 커밀라 '콘월 공작부인(The Duchess of Cornwall)'이라고 불립니다. (콘월 공작부인도 왕세자빈이 갖게 되는 호칭 중 하나입니다. 다이애나빈도 콘월 공작부인이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혼으로 'Her Royal Highness'도 빠지고, 정관사 'The'가 사라져도 영국 사람들 마음속에 'Princess of Wales'는 오직 다이애나빈뿐이니까요. 같은 이유로 찰스 왕세자가 영국 국왕이 돼도 커밀라 부인은 '커밀라 왕비(Queen Consort)'가 못 됩니다. 영국 헌법재판소는 왕비라는 표현을 써도 괜찮다고 했지만 왕실은 그냥 '커밀라 빈(Princess Consort)'을 쓰겠다고 한 상태입니다.

찰스-다이애나 결혼식 때 잿빛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저주했던 커밀라 부인. 그리고 끝끝내 찰스 왕세자를 손에 넣은 커밀라 부인. 그렇다면 왕비 칭호는 잃어도 괜찮은 걸까요? 아니면 "영국 왕실 공인 마지막 처녀"로 시집왔으면서도 왕비가 되지 못한 다이애나빈의 삶이 참 딱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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