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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라 못 부를 건 없지만 그래도 '명성황후'


ㅍㅍㅅㅅ에 '명성황후를 민비로 부를 자유를 허락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한 부분을 인용하면:


민비는 따지고 보면 전혀 격하하는 호칭이 아니다. '민씨 왕비'의 준말이 '민비'다. 마찬가지로 '민씨 왕후'의 준말은 '민후'이다. 조선의 마지막 대충신이라 할 매천 황현은 그의 매천야록에서 민비를 '중궁 민씨' 혹은 '민후'라고 불렀다. 이때는 이미 '명성황후'라는 존호가 추존된 다음인데도 황현이 민비를 명성황후라 부르지 않았으니 매천 황현도 상무식꾼이나 친일매국노가 되어야 하는가?


어째서 민비를 명성황후로 부르라고 폭압적인 강짜를 부리는가? 이것이 상식적인 현상인가? 그럼 사후에 '흥선헌의대원왕'이라 추존된 흥선대원군은 왜 각종 매체와 교과서에서 대원군이라고 계속 불리고 있는가? 사후에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나 헌경왕후로 추존된 혜경궁 홍씨에 대해서는 왜 사도세자나 혜경궁 홍씨라 부른다고 난리를 안 치나?


민비는 격하하는 호칭 맞다

문제 의식 자체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민비가 단순히 '민씨 왕비' 줄임말인 것만은 아니다. 왕이 정실 부인을 여럿 둘 수 있던 고려 시대에는 이런 표현으로 왕비를 구분했던 게 사실. 그런데 왕비가 한 명뿐이었던 조선 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호칭을 구분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은 청주 한씨(6명)지만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한비(韓妃)라는 표현은 없다. 성을 따서 부르는 건 폐비(였다 복권한) 신비(愼妃·중종)뿐이다. 광해군일기에 등장하는 유비(柳妃) 역시 폐서인 신세다.


대신 왕비를 칭할 때는 존호를 썼다. 태조 이성계의 첫 아내인 신의왕후 한씨는 한비가 아니라 절비(節妃)고, 조선 최고 국모로 손꼽히는 소헌왕후 심씨는 심비가 아니라 공비(恭妃·세종)였다. 물론 이런 존호와 함께 중전, 중궁, 왕비전하, 중궁전하 같은 표현도 같이 썼다.


결국 조선에서 '성(姓)+비' 조합이 결코 우호적인 표현은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조선 국법이었던 경국대전에서는 아예 이 조합을 금지했다.


1983년 대한민국 문교부에서 명성황후를 공식명칭으로 사용하기로 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명성황후는 생전에 존호를 받은 적이 없고 시호(명성)만 받았기 때문에 '명성황후 민씨'라고 쓰는 게 '공식적으로' 올바른 표현이다.


매천야록을 근거로 쓰면 안 되는 이유

글쓴이는 또 매천야록을 근거로 민비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


일단 '중궁 민씨'라는 표현은 앞서 살펴본 공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 다만 이책 하권 8장에 딱 한 번 등장하는 '민비'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현재 존재하는 매천야록은 원본이 아니다. 1920, 30년대 후손이 필사한 걸 가지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55년 간행한 게 기준이다.


1920, 30년대는 이미 민비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던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황현이 직접 이 표현을 썼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원본에 그렇게 썼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매천야록이 꼼꼼하게 사실 관계를 파악해 쓴 역사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매천야록은 한 사람이 철저히 주관적으로 적어간 일기다. 일기에 공식적인 칭호를 쓰지 않았다고 나무랄 수는 없지 않은가.


같은 이유로 누군가 명성황후 민씨를 (사석에서) 민비로 부르겠다는 걸 말리고 싶지 않다.


일제 강점기 때 '명성황후' 마음대로 못 썼다

그렇다면 1983년 명성황후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되찾기 전까지 민비가 더 널리 쓰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동아일보는 창간 다음날(1920년 4월 2일자)부터 명성황후라는 표현을 쓴다. 1935년까지 이 말을 쓰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고종태황제'라는 표현 역시 1932년까지 자유롭게 등장한다.


그러나 1936년부터 1940년 8월 11일 강제 폐간 되기까지는 명성황후라는 표현이 지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민비는 계속 나온다.



왜였을까. 조선총독부에서 1935년 내선일체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선(대한제국) 시대 시호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일본 왕실에서는 '이름+왕비(일본식으로는 황후)'가 자연스러운 호칭이었던 데다(일본 문서에서는 1870년대부터 민비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당시 민초들은 그가 나라를 망하게 한 주범이라며 '민비X년'이라고 깎아내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굳어진 호칭이 1983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이다.


명성황후로 부른다고 못 씹을 건 없다

지금껏 쓴 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니 명성황후 민씨를 민비로 부르겠다는 자유를 막을 수는 없다.


글쓴이 말처럼 그게 "얼마나 역사에 대한 상식이 없고 무식하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일등공신 중 하나인 여자한테 무슨 '황후'라는 존호를 붙이냐"는 의견에서 비롯한 일이라면 더욱 민비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명성황후를 공식 호칭으로 인정한 이유, 또 민비라는 호칭이 널리 쓰이게 된 이유까지 따져 보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명성황후 민씨'라고 불러주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이야 어찌됐든 (대한제국은 그가 죽고 나서 출범하기는 했지만) 그가 황제의 아내가 아니었던 것도 아니고, 민씨가 아니었던 것도 아닌데 '명성황후 민씨'라고 부르고 씹는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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